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리비아의 유명 소설가 히샴 마타르는 최근 자전적 소설 ‘실종의 해부학(Anatomy of a Disappearance)’을 펴냈다. 소설에 따르면 전직 외교관인 작가의 부친은 1990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납치된 뒤 소식이 끊겼다. 아들은 부친이 돌아가셨는지, 돌아가셨다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가셨는지를 알기 위해 백방으로 묻고 다녔지만 수도 트리폴리 정치범 수용소에서 봤다는 사람 외엔 만날 수 없었다.
리비아와 이집트의 독재자는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는 데 서로 협력했다. 서방 세계 역시 이들의 정권을 유지해주는 대가로 이득을 취했다. 이집트는 아랍 세계 소식을 전하는 훌륭한 정보원이기도 했고 서방의 목소리를 아랍권에 전하는 대변자이기도 했다. 리비아는 석유와 천연 자원을 앞세워 서방을 유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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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르는 미국 유명 잡지 ‘더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이야말로 미국인들은 자기들 손으로 뽑은 각료들이 앞장서 무바라크 전 대통령 같은 독재자들을 30년 넘게 묵인해 왔다는 사실을 되짚어 봐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집트 민주화 시위가 처음 시작됐을 때 조지프 바이든 미국 부통령조차 “무바라크 대통령은 독재자가 아니다”라고 했었다.
내가 리비아 사태에 서방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서방이 이처럼 도덕적 파산 상태이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은 아랍인들의 자유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들을 돕는다며 군대를 보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서방 군대가 없으면 카다피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건 오만한 발상이다.
영국 역사가 티머시 가턴 애시는 책 ‘사실은 파괴적이다(Facts are Subversive)’에서 반(反)나치 저항 시인 체스와프 미워시의 시를 인용했다. ‘시인은 잊지 않는다/한 사람을 죽일 수 있지만 다른 이가 곧 태어난다/네 말과 행동은 기록될 것이다.’
그렇다. 시인은 잊지 않는다. 카다피 원수의 무자비함도 기록될 것이고 마타르 아버지에게 생긴 일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죽은 자들의 이름을 잊지 말고, 어떤 범죄가 언제 일어났는지 기록하자. 그리고 서방 역시 독재자의 공모자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리비아 정부는 언젠가 진실 앞에 무너질 것이다. 그것도 가까운 시간 안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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