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커뮤니케이션” 소통을 찾는 사람들
인문사회 동아리가 사라지는 대학가에 토론 동아리가 활발히 활동하면서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해 5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가입한 한양대 토론동아리 ‘한토막’의 회원들이 무상급식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한토막은 올해로 1년이 갓 지난 신생 동아리. 지난해 하반기 신규 회원 모집에는 60명이 몰려 12명만 선발했다. 경쟁률이 5 대 1인 셈이다. 상당수 대학의 인문사회 동아리가 회원을 모집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례적이다. 동아리 대표인 이동준 씨(스포츠산업과 2학년)는 “사회가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중시하는 데다 정치인 등 기성세대의 토론문화에 대한 실망감, 소통에 대한 욕구 때문에 대학생들의 관심을 끄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소통에 목마른 사회
토론과 설득의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2009년부터 매년 열리는 ‘국회의장배 대학생 토론대회’에는 전국적으로 200여 개의 대학 토론동아리가 참여하고 있다. 대학생뿐 아니라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설득과 협상의 노하우를 배우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2011년 한국사회는 왜 이렇게 소통의 기술에 목말라할까. 한국 사회에서 찬반양론이 분분한 정치 사회적 이슈는 끊임없이 제기되지만 이를 해결할 방법론에 대한 고민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이후 4대강 사업, 세종시 이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찬반양론이 갈리는 이슈들이 불거지면서 소통의 문제가 안팎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식으로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회인식도 소통을 어렵게 한다는 시각도 있다. 김 대표는 “우리 사회에서는 말을 잘하는 사람에게 ‘입만 살아 있다’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는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면서 “어릴 때부터 토론의 방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서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고 분석했다.
○ 테크닉만으로는 한계
일부에서는 소통의 노하우를 하나의 테크닉으로만 보려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소통의 기술을 다룬 상당수 책들은 ‘상대방의 눈을 응시하다가 3초 동안 잠시 시선을 옮겨라’ 혹은 ‘대화를 할 때 손바닥의 방향은 45도 정도를 유지하라’ 등의 테크닉만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 민주주의를 위한 훈련 필요해
한양대의 토론동아리 한토막은 이날 1시간가량의 토론을 마친 뒤 토론자 및 청중의 자체 평가를 가졌다.
“토론자들이 자료를 읽기만 하고 다른 토론자의 의견을 집중해서 듣는 자세가 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방청객)
“개인적으로는 무상급식을 반대했지만 찬성 쪽 토론자로 나서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무상급식 대상자라는 주변의 인식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것을 알고는 마음이 아팠습니다.”(찬성 측 토론자)
지도교수인 한양대 황성기 교수(법학)는 “한국사회는 토론과 합의라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며 “학생들은 토론이라는 훈련과정을 통해 민주주주와 공존의 법칙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 또래 갈등은 또래끼리 대화로 푼다 ▼
5, 6학년으로 구성된 연수초등학교의 또래조정위원회 조정위원들. 연수초등학교 제공
가령 수학여행에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다고 생각한 학생은 조정신청서를 작성해 신청함에 넣는다. 며칠 안에 해당 학생과 왕따를 시킨 학생, 5, 6학년생들로 구성된 조정위원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또래조정위원회는 갈등 관계에 있는 학생들이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의견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대화 과정에서 교사들은 참석하지 않아 아이들의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책을 내놓게 된다.
또래조정 결과는 양 당사자의 갈등 상황을 조정위원들이 요약정리한 후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당사자 간에 합의가 이뤄지면 합의서를 작성한 뒤 서명하고 봉합한다. 합의서의 내용은 비밀을 유지한다.
이 학교의 김재진 교무부장은 “학기당 서너 번 또래조정위원회가 열리고 있다”며 “학생들은 억울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듣게 되면 대부분 화해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 또래조정제도를 제안한 사람은 서울중앙지법의 정준영 부장판사다. 정 판사는 인천지방법원 근무시절 ‘법관 멘터링’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미국 등에서 활발하게 운영되는 또래조정 프로그램을 학교에 도입해볼 것을 제안했다.
보통 학교에서의 갈등 해결은 교사 등이 학생들의 잘잘못을 결론 내리는 방식이다. 하지만 또래조정은 갈등의 원인을 드러내서 해결책을 학생 스스로 찾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갈등 해결에 교육 효과가 클 것이라고 정 판사는 생각했다. 그는 “한국 사회는 자기주장은 잘하지만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하는 대화의 훈련은 부족하다”며 “합리적인 대화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훈련을 거쳐 체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학교 폭력 등을 해결할 목적으로 1980년대부터 또래조정제도가 운영되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 교육재단이 실시한 또래조정 프로그램에는 1089명의 학생이 조정에 참여해 약 93%의 분쟁이 성공적으로 해결됐다. 테네시 주도 또래조정 훈련 전에는 학생들의 65%가 다툼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려 했으나 훈련을 받고 난 뒤에는 77%의 학생들이 분쟁해결 수단으로 협상이나 조정 등의 수단을 사용하게 됐다는 보고도 있다.
정 판사는 “각 지역의 교육청이 어린 시절부터 소통능력을 기르고 사회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교육모델로서 또래조정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