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유전자 1만2000개… ‘질병정복’ 갈길 멀다
《“게놈지도를 이용하면 2020년까지 유전자 조작 인간을 탄생시킬 수 있다.” 2001년 2월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프랜시스 콜린스 현 미국국립보건원장은 당시 이렇게 말했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4월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인간게놈프로젝트가 개개인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 어렵다”며 말을 바꿨다. 올해 2월로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성과가 발표된 지 10년이 됐다. 2001년 ‘판도라의 상자’를 열며 걸었던 기대는 얼마나 현실화됐을까.》
○ 10년 전 ‘네이처’, ‘사이언스’ 표지 장식
과학 학술지의 양대 산맥인 ‘네이처’(왼쪽)와 ‘사이언스’는 각각 2001년 2월 15일과 16일 인간의 전체 DNA 염기서열을 해독한 연구결과를 표지 논문으로 소개했다. 사진 제공 네이처·사이언스
예를 들어 알츠하이머병은 1번 염색체에 있는 유전자 ‘PS2’에 돌연변이가 생겨 앓는데, 이를 막으면 병을 피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이 밖에도 알려진 질병 유전자는 많다. 유방암은 17번 염색체에 있는 ‘BRCA1’ 유전자가, 간질은 6번 염색체에 있는 ‘EPM2A’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원인이다. 당뇨병은 DDM1 유전자에 문제가 생겨 앓는다. 만성골수성 백혈병 역시 ABL, BOR 유전자의 변이가 발병 이유로 꼽힌다.
현재까지 질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유전자는 3000여 개 정도다.
○ 당뇨병 관여 유전자만 1500여 개
판도라의 상자를 연 지 10년이 지났지만 인류는 여전히 질병을 정복하지 못했다. 인간게놈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송규영 울산대 의대 교수는 “적어도 30년 이상 연구가 더 돼야 유전자를 이용한 진단과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복잡하게 얽힌 여러 개의 유전자가 발병 원인이라는 점도 유전자 치료를 어렵게 한다. 가령 당뇨병 발병에 관여하는 유전자만 1500여 개다. 장 질환의 일종인 ‘크론병’에 관여하는 유전자 70여 개에 문제가 없는 사람도 이 병에 걸린다.
박종화 게놈연구재단 게놈연구소장은 “10년 전 질병 연구의 대혁신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현재 상황은 당시 기대에 비춰 10∼20% 수준”이라고 말했다.
○ 하루 250억 개 염기서열 해독 가능
아직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10년간 성과도 많았다. 일레인 매디스 미국 워싱턴대 유전학과 교수는 이달 10일자 ‘네이처’에 “게놈지도를 토대로 개인의 질병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염기서열 해독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염기서열 분석 속도가 20년 만에 500만 배 증가하면서 비용이 크게 줄었다. 김종일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인간게놈프로젝트는 15년간 30억 달러(약 3조3000억 원)를 들여 사람의 게놈을 해석했지만 지금은 1만 달러(약 1100만 원)면 분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국 국립인간게놈연구소(NHGR)는 2014년경이면 게놈 해독 1000달러(약 100만 원) 시대가 올 것으로 보고 있다.
100만 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자신의 염기서열을 알 수 있다면 맞춤의학 시대가 다가올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에서 네 번째이자 한국인 최초로 자신의 게놈을 분석한 김성진 차움 차암연구소장은 “유전자 서열을 값싸고 빠르게 해독할 수 있게 돼 많은 사람의 정보가 쌓이게 되면 이를 비교분석해 이제껏 알지 못했던 유전자의 기능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종일 교수도 “개인용컴퓨터(PC) 가격이 1000달러대로 떨어지면서 인터넷 등 각종 산업 환경이 급변한 것처럼 게놈 해독 1000달러 시대는 맞춤 의학의 길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