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시집 ‘저녁’ 펴낸 송기원 씨“죽음의 공포도 정면으로 맞서니 자유로워지네요”
시집 ‘저녁’에서 죽음을 생과 사를 가르는 경계가 아니라 서로 끌어안는 모습으로 노래한 송기원 씨.그는 “올봄 학교를 그만두면서 자유로워지고 죽음에 대한 감각이 열려 그렇게 많은 시를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가령 아무도 찾아낼 수 없는 깊은 골짜기에서, 내가/시체로 누워 있다고 하자.’로 시작되는 시 ‘육탈(肉脫)’은 내용으로만 보면 잔혹 시다. 굶주린 독수리가 시체를 먹어치우고, 남은 데엔 파리가 구더기를 키우고, 진물은 나무의 양분이 된다. 그런데 추하다 못해 무시무시하기까지 한 낡은 육신은 종내 이렇게 화한다. ‘가령 봄에는 꽃비가, 가을에는 낙엽이/하얀 빛을 포근하게 덮는다고 하자./가령 평생을 꾸정모기로 그악스럽던 내가/처음으로 부드러운 선물을 주고받았다고 하자.’ 죽음이 삶과 화합하는 장면을 붙잡아 내는 시인의 감각이란!
“초기 시로 돌아간 것 같아요. 퇴폐적이고 위악적인…. 죽음에 대한 생각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공포의 대상이니 쳐다보고 싶지 않은 것. 그런데 그런 게 아닙디다. 내 안에 죽음에 대한 감각이 오래전부터 녹아 있었어요. 그걸 정면으로 맞서니 자유로워져요.”
‘주인아낙네가 장다리 텃밭에서 하는 일은 아침저녁으로 장다리 꽃대 아래 시들어서 누렇게 시래기가 된 이파리만을 따주는 것이었다. 단 한 잎이라도 생생한 잎은 건드리지 않은 채 시든 이파리만 따는 주인아낙네의 행동이 나에게는 무슨 종교적인 의례처럼 경건하여서, 이를테면 장다리의 삶은 건들지 않고 장다리의 죽음만 치워주는 무슨 장례식 같기도 했다.’ 그 장례식의 비밀은 ‘춥고 긴 극빈의 겨우살이에 필요한 시래기를 한 잎이라도 더 거두기 위해서 모든 푸성귀를 키울 수 있는 한껏 장다리로 키운 것이었다’. 장다리의 장례식은 사람들의 삶을 위해서였음을 발견한 시인. 죽음은 이렇게 삶과 어우러진다.
젊은 날 건달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문학으로 구원받고, 1980년대 격렬한 사회운동을 지나서 1990년대에는 인도와 히말라야를 다니면서 수행자의 삶을 살았다. 그런 그가 이제 죽음을 성찰한다.
“문구 형님(소설가 이문구)이 죽을병에 걸렸을 때 내가 그랬어요. 옛날로 치자면 형님도 오래 살았다고. 그런데 내가 문구 형님 죽은 나이를 훌쩍 지났어요. 그 생각을 하니….”
시 ‘옛날’에서 그는 이 얘기를 시로 적으면서 ‘옛날을 혀끝에 올리려니/참혹해라,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목숨이여’라고 뇐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