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장택동 기자 방콕 르포泰 반정부시위 68일만에 강제 해산
장갑차 40여대 동원 전격해산… 진압작전 8시간 만에 “상황끝”
국민들 “평화적 해결방안 외면… 아피싯-푸미폰-탁신 모두 책임”
도농갈등 - 탁신건재 불씨 여전… 언제든 시위사태 재연될 가능성
○ 강제 해산에 무릎 꿇은 시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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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이 밀어붙이자 시위대 속 어린이와 노약자 수백 명은 울음을 터뜨리고 비명을 질렀다. 최루탄을 견디지 못해 마스크를 쓰고 도망치는 모습도 보였다. 시위대 지도자인 나따웃 사이꾸아 씨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자리를 지켜 달라”고 호소했지만 남북 양쪽에서 밀고 들어오는 군을 당해내긴 역부족이었다.
결국 시위대는 밀리기 시작했고 오전 11시 무렵 룸피니 공원이 군에 장악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군이 핵심 거점인 랏차쁘라송 교차로를 향해 거침없이 진격하자 시위대의 전열은 완전히 무너졌다. 결국 오후 1시 반경 시위대 지도부는 남아 있는 수백 명의 시위대를 향해 “더는 희생을 원치 않는다. 항복한다”고 선언했다. 지도자인 자뚜뽄 쁘롬빤 씨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지금 우리가 항복했다고 완전히 진 것은 아니다”라며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작전 시작 7시간 40분 만인 오후 1시 40분경, 시위대 지도부 7명이 경찰에 자수했다. 이로써 3월 12일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68일 만에 막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군경과 시위대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져 이탈리아 사진기자 파비오 폴렝기 씨와 시위대 시민 5명 등 6명이 숨졌고 60여 명이 다쳤다. 이로써 3월 12일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후 최소 74명이 숨지고, 1800여 명이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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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방콕에 북쪽으로 인접한 논타부리에서는 시위를 벌이던 200여 명의 ‘레드셔츠’들이 시청 진입을 시도했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 지지자들이 많은 북동부 지역의 우돈타니 주와 콘깬 주에서는 시위대가 관공서에 난입하거나 불을 지르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에 정부는 이날 오후 8시부터 20일 오전 6시까지 방콕과 23개 주에 통행금지를 선포했다.
앞으로도 불씨는 계속 남아 있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었던 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도농(都農), 빈부 갈등은 해결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탁신 전 총리가 건재하고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여전히 강해 언제라도 시위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 태국 정부의 가장 큰 걱정거리다. 일부 시위대 핵심 인사들이 방콕 외곽으로 빠져나가 새로운 거점을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탁신 전 총리는 현지 TV와의 통화에서 “정부의 강제해산으로 앞으로 더 많은 지역에서 시위가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 정치 싸움에 애꿎은 시민만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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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게까지 되도록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아피싯 총리, 침묵으로 일관한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과 함께 시위대의 실질적 최고지도자인 탁신 전 총리에 대한 비난이 높다. 현지 일간 네이션은 “탁신 전 총리가 시위대 해산의 전제 조건으로 자신의 사면, 몰수된 재산 환원, 여권 갱신 등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했다”고 지적했다. 한 교민은 “탁신 전 총리가 자신을 따르는 시위대에 ‘이제 그만 하자’고 한마디만 했으면 쉽게 마무리됐을 일인데 결국 강제진압으로 이어져 애꿎은 사람들만 숨진 셈”이라고 꼬집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