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국격 고루 높은 외치 성적표
이명박 대통령의 외교무대 공적은 눈부시다. ‘실사구시 외교’라는 칭찬을 할 만하다. 하이라이트는 400억 달러에 이르는 아랍에미리트의 원전 프로젝트를 따낸 거다. 세일즈맨 대통령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그렇다고 실용만 볼 건 아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유치해 국격(國格)을 드높일 계기도 마련했다. 또 기후변화협약 정상회의에선 “나부터(Me first)”를 역설해 박수를 받았다.
외치에는 역대 대통령 중 DJ가 단연 뛰어났다. 재임 중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했다. 사회민주주의 전통이 강한 유럽에서 특히 평가가 높았다. 임기 중반 DJ는 유럽 순방을 마친 뒤 몽골을 거쳐 귀국길에 올랐다. 당시 국내는 ‘옷 로비 사건’으로 시끄러웠다. 귀국 전날 울란바토르의 호텔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 기자가 “(법무)장관을 경질할 겁니까”라고 물었다. DJ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손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그만합시다”라고 말한 뒤 회견장을 총총 떠났다.
밖에서만 잘해선 안 된다. 안에서 더 잘해야 한다. 2월 임시국회가 열렸지만 여야 간 ‘죽고살기 싸움’이 재연될 게 뻔하다. 세종시 및 4대강 문제와 사법개혁, 국회개혁, 행정개편 등 나라의 장래를 가를 현안이 즐비하다. 그러나 대화와 소통으로 타결의 실마리를 찾을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다보스포럼에서 한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기조연설을 했다. 공중에 붕 뜬 듯한 기분이었을 거다.
그러나 밖의 융숭한 대접과 추어올림은 잠시다. 지난달 30일 귀국길에 오르면서 이 대통령은 ‘한여름 밤의 꿈’에서 화들짝 깨어났을 거다. 10년 전 DJ가 그랬던 것처럼 내정의 난맥에 골머리를 싸맸을 것 같다. ‘화려한 외치, 빈곤한 내치’는 곤란하다. 바둑 둘 줄 아는 사람은 안다. 중원을 탐하는 세력 바둑이 모양은 좋지만 근거를 챙기지 못하면 와르르 무너진다는 것을. 설날 전이든 후든 대통령이 세종시 문제를 직접 껴안아야 한다. 박근혜 전 대표를 만나고, 충청도도 방문해야 한다. 무엇보다 서생의 문제의식도 보듬어 이들을 설득하고, 오바마처럼 초당적 리더십까지 발휘하면 좋겠다.
늘어선 내치 현안 못 풀면 물거품
1992년 미국 대선에서 ‘클린턴의 아이들’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카피로 대권을 먹었다. ‘바보야, 문제는 내치야!’라는 낮은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최영훈 편집국 부국장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