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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눈/프랭크 리치]10년간 우린 속았다

입력 | 2009-12-22 03:00:00


올해, 그리고 새 밀레니엄의 첫 10년에 작별을 고하면서 우리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올해의 인물’은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아니다. 재난이 닥친 뒤에 둑이 무너지지 않도록 손가락 하나 끼웠다고 박수를 쳐야 한단 말인가.

최근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 모두가 쉽게 속아 왔다는 사실이다. 금융위기를 가져 온 씨티그룹이나 모기지 업체 패니메이, 백악관, 성추문에 빠진 대형교회 등이 우리를 속여 왔다. 이들이 지난 10년의 역사를 움직여 왔다고 할 만하다. 진짜 ‘올해의 인물’이 골프스타 타이거 우즈인 이유다.

우즈의 무용담은 20여 일 연속으로 뉴욕포스트 커버를 장식했다. 그의 추문은 2001년 9·11테러만큼이나 얘깃거리가 됐다. 2001년 후반으로 돌아가 보자. 가장 중요한 뉴스는 뉴욕이 아니라 휴스턴에서 발생했다. 에너지 기업 엔론의 회계부정 사태가 터진 곳이다. 그 회사는 금융기관, 언론, 투자자들에게 ‘산업계의 신’으로 떠받들어졌다. 숭배자들은 엔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경제전문지 포천은 엔론을 ‘가장 혁신적인 미국 기업’에 6년 연속 선정하기까지 했다.

유명인의 추문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 골퍼의 경우 모범적인 대외 이미지와 난잡한 사생활 사이의 간격이 엔론만큼이나 크다는 점에서 놀랍다. 모든 미국 기업과 언론이 마치 팬이나 된 듯 ‘우즈 신화’에 빠져 그의 이미지를 유지해 주려고 애썼다. 골프다이제스트는 신년호 커버스토리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우즈에게 배워야 할 것”이라고 적을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면 처참해진 우즈의 이미지는 차츰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의 추락이 상징하는 현상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우리가 10년 동안 지도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바보가 돼 왔다는 사실이다. 가장 치명적 사례는 우리를 이라크로 이끈 두 개의 환상이었다.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고 알카에다와 연계돼 있다’는 것이다. 이 환상은 조지 W 부시 전 행정부, 이라크 침공을 지지한 민주당 정치인들, 백악관의 소설을 퍼 나른 언론 등에 의해 ‘진실’이 됐다.

정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공화당원들은 가족 가치를 설교하는 정치인들에게 끊임없이 매료됐다. (매춘 스캔들에 빠졌던) 데이비드 비터 공화당 상원의원, (동성애 구애 파문의) 래리 크레이그 공화당 상원의원 등이 그들이다. 칼 로브 전 백악관 부실장은 공화당 장기집권을 이뤄 낼 주역으로 추앙되기도 했다. 정치인의 사기는 금융계에 비하면 애들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엔론 사태 이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은행, 연방감독기구, 신용평가회사들은 ‘독성 자산’에 다시 한 번 통행증을 안겨 줬다. 파국을 맞을 때까지 수지맞는 장사를 향한 질주는 계속됐다.

‘골프 잠정 중단’을 선언한 우즈는 다시 복귀할 것이다. 하지만 10년 동안의 거대한 국가적 재난, 즉 낭비적 전쟁과 파멸적 금융위기는 쉽게 넘길 수 없는 문제다. 우리 지도자들이 우리를 철저히 속여 넘긴 것이다.

현재 오바마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미국의 좌파와 우파가 합동작전을 벌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미지가 우즈만큼이나 공허하다는 것이다. 우파가 보기에는 반미 급진주의를 위장하기 위한 사기였다. 좌파가 보기에는 결단력 없는 소심함이다. 진실은 아마 둘 다 아닐 것이다. 하지만 10년 동안 속은 미국인들이 지도자에게 냉소적 시선을 보내는 것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프랭크 리치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