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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홍권희]국세청, 보호막 더 걷어내야

입력 | 2009-08-24 19:54:00


국세청은 작년 이맘때 “납세자보호위원회를 설치해 3개월 운영해본 결과, 세무조사 기간연장 승인이 그 이전에 비해 87% 줄었다”고 발표했다. 국세청 공무원들끼리 결정할 때는 세무조사 기간을 쉽게 연장했지만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납세자보호위원회를 운영하고부터는 웬만하면 기간 연장을 못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조사반원들은 “조사를 하다가 그만둬 찜찜하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납세자를 덜 힘들게 하는 세무조사 기법을 개발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요즘은 국세청이 세금만 잘 거둔다고 능사가 아니다. 세무조사 연장 같은 징세(徵稅)편의적 세무행정을 고치지 않으면 납세자의 반발이 커진다. 경찰 검찰도 피의자 인권보호에 민감한데 납세자가 국세청에서 괄시당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미국 프랑스 등은 10여 년 전부터 납세자 보호를 위한 법제도를 만들고 이중 삼중의 기구를 두어 세무행정이 과잉으로 흐르지 않도록 감독하고 있다.

지난달 취임한 백용호 국세청장이 내놓은 국세청 개혁방안은 ‘일부 진전, 일부 미흡’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요한 경우 세무조사를 중단할 수도 있는 납세자보호관(국장급) 자리에 국세청 근무 경력이 없는 민간인을 공채하는 것은 공무원을 임명하던 종전에 비해 진전이다. 하지만 여전히 국세청장의 지휘를 받게 돼 있다.

미국도 11년 전까지는 내국세입청(IRS·국세청) 청장이 임명하는 납세자옴부즈맨이나 납세자보호관을 둔 적이 있다. 1998년 이후에는 IRS 개혁의 일환으로 도입한 전국납세자보호관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재무부 장관의 임명을 받는 전국납세자보호관은 지방납세자보호관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며 청장이나 장관을 거치지 않고 상하원 위원회에 연 2회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직무의 독립성이 대폭 강화됐다.

우리의 납세자보호관 제도는 아쉽게도 미국이 독립성 부족을 이유로 11년 전에 버린 것과 비슷한 구조다. 납세자의 권리의식이 커지는 데 발맞춰 현행 미국 수준의 독립성을 띤 제도로 바꿀 필요가 있다.

백 청장은 연초부터 거론되던 국세청감독위원회 설치 방안을 “옥상옥(屋上屋)의 우려가 있다”며 거부했다. 개혁을 하더라도 국세청이 알아서 하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백 청장이 그 대신에 도입한 국세행정위원회는 9명의 민간인을 포함한 13명의 멤버가 국세행정 전반에 걸친 안건을 심의해 의견만 내는 국세청장 자문기구이다. 이 위원회는 국세청 내부에 설치돼 6개월에 한 차례의 정기회의와 필요시 수시회의를 여는 정도여서 세정(稅政)개혁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미국은 상급기관인 재무부가 IRS를 전문적으로 관리감독하기 어렵다는 하원의 판단에 따라 1998년 위원 9명 중 6명이 민간 전문가인 IRS감독위원회를 설치했다. 위원회의 첫째 임무는 ‘납세자가 IRS 관리들에 의해 적절하게 대우받도록 보장하는 일’이다. 이 위원회 말고도 IRS 직원의 업무비리와 조세범죄를 조사하는 별도기구가 있다. 여러 기관을 설치해 운영하는 것은 과세권 남용을 견제하고 납세자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백용호 국세청’이 납세자 보호를 위한 법제 정비에 성과를 내려면 국세청을 감싼 보호막을 더 걷어내고 검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 미흡한 내부 혁신은 외부 감독을 불러온다. 백 청장은 역대 청장들의 반짝 개혁이 실패한 이유를 통찰하기 바란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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