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방-귀환 이모저모
비행기 트랩 내려서며 두손 번쩍 들고 고개숙여 인사
유나 리, 네살 딸과 감격 포옹…한동안 말 못잇고 흐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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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은 뉴스 반복하며 홍보전
“모처로 이동한 후 문을 열고 걸어 들어가는 순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 순간 그동안의 악몽이 마침내 끝났음을 알게 됐습니다. 지난 140일은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5일 오전 5시 50분(한국시간 5일 오후 9시 50분) 미국 로스앤젤레스 부근 버뱅크의 밥호프 공항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도착한 미국인 여기자 로라 링 씨(32)는 흐느끼면서 이같이 말했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한국계인 유나 리 씨(36)는 네 살 난 어린 딸과 미국인 남편을 포옹한 채 한참 동안 떨어질 줄 몰랐다. 이들 가족은 한동안 서로 부둥켜안고 흐느낄 뿐 말을 잇지 못했다. 미국 대부분의 주요 방송은 정규방송을 중단한 채 클린턴 방북단의 공항 도착 소식을 생중계했다. 이들을 다시 품에 안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려온 가족들은 141일 만의 극적인 상봉에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 로라 링 씨 가족으로는 남편 레인 클레이튼 씨와 언니 리사 링 씨 등 6명이 나왔다.
○…전세기 문이 열리자 유나 리 씨와 로라 링 씨가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수백 명의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트랩을 내려선 유나 리 씨는 고개를 크게 숙이면서 인사했고 로라 링 씨는 자유를 되찾았다는 듯 손을 번쩍 치켜들기도 했다. 이들은 가족을 보자 눈물을 터뜨렸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소속된 커런트TV 설립자인 앨 고어 전 부통령과도 감격의 포옹을 했다. 마이크를 잡은 로라 링 씨는 “우리는 항상 강제노동수용소로 끌려갈 것을 걱정해야 했지만 이제 내 인생의 악몽은 끝났다”며 클린턴 전 대통령을 비롯한 방북단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며 거듭 감사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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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이상 가족 상봉이 진행된 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비행기에서 내렸고 환영객들은 큰 박수로 맞았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3월 이래 북한에 억류돼온 로라 링, 유나 리 씨가 석방된 데 대해 “대단히 기쁘다”고 5일 밝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날 밥호프 공항에 도착한 뒤 자신의 뉴욕사무소가 배포한 성명을 통해 두 기자의 그동안의 처지를 ‘긴 시련’으로 지칭하며 “지금 고향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가족과 상봉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이번 방북에 이용한 비행기는 미국 국기 표시가 없는 흰 비행기로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한 억만장자가 자신의 전용기를 무료로 빌려준 것으로 전해졌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5일 남편인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북한 방문으로 억류됐던 미국 여기자들이 무사히 풀려난 데 대해 “매우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프리카 7개국 순방을 위해 현재 케냐 나이로비를 방문한 클린턴 장관은 이날 기자들에게 “남편과 통화했다”며 “기자들이 집으로 돌아오게 돼 매우 기쁘고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클린턴 장관은 또 “모든 일이 잘됐다. 기자들은 캘리포니아에 도착해 곧 가족과 재회할 생각에 매우 들떠 있다”고 전했다.
○…북한 신문과 방송 등 매체들은 4일에 이어 5일도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 소식을 반복 보도하면서 대내외 홍보에 열을 올렸다. 대내용 라디오 방송인 조선중앙방송은 이날 ‘오늘호 노동신문 소개’ 코너에서 “(조선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이 5일자 1면에 관련 소식을) 옹근(조금도 축나지 않은) 한 면에 실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오전 3시 58분경 ‘미국 전 대통령 빌 클린턴의 조선 방문과 관련한 보도’를 전문 소개했고 조선중앙방송과 대외용 라디오방송인 평양방송도 5일 매시간 뉴스를 통해 보도를 내보냈다. 조선중앙방송은 이날 첫 정규 뉴스 시간인 오전 6시를 비롯해 7시와 10시에, 평양방송은 첫 정규 뉴스 시간인 오전 7시와 8시에 각각 면담 소식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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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