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17일 처음으로 통화를 했다. 두 정상은 1988년 리비아가 저지른 팬암 항공기 폭파사건의 배상 문제가 매듭지어진 것을 서로 축하하면서 “양국의 고통스러운 역사가 끝나게 됐다”고 덕담을 나눴다. 리비아와 미국 사이가 상대방 지도자를 인정하는 정상적인 관계로 탈바꿈한 것이다.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적이 없다’는 말 그대로 1980년대 테러와 보복공격을 주고받던 두 나라가 마침내 손을 잡았다.
두 나라 관계의 정상화는 2003년 핵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와 테러를 포기한 카다피의 결단에서 비롯됐다. 반(反)서방 노선을 고수하며 각종 테러를 주도하던 카다피는 고립과 경제적 피폐로 고통 받는 국민을 살리기 위해 180도 다른 지도자로 변신했다. 미국은 즉각적인 경제제재 해제와 3년 뒤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로 화답했다. 국제사회도 핵과 테러를 포기한 리비아를 정상(正常)국가로 대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리비아의 관계 개선은 북한이 꼭 참고해야 할 변화다. 카다피도 2005년 1월 “북한도 우리가 한 것과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충고하지 않았는가. 미국이 지난달 북한을 20년 만에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해 여건도 나아졌다. 북한이 리비아처럼만 하면 미국과의 급속한 관계 개선이 가능해 보인다. 국제사회도 북한의 변화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외무성 대변인 논평과 언론보도를 통해 “리비아 모델은 상대방의 무장해제를 노린 기만극”이라고 비난해 왔다. WMD와 테러 포기 이후 리비아가 군사적 경제적으로 얼마나 더 안전해졌는지 뻔히 알면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오히려 기만극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부시와 카다피의 전화통화에서 교훈을 배워 확실하게 핵을 포기하는 길로 간다면 북한은 ‘제2의 리비아’가 될 수 있다. 버락 오바마의 미 대선 승리로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는 기대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리비아와 관계 개선을 이룩한 결정적 계기가 카다피의 핵 포기임을 잘 알고 있는 오바마가 북핵을 제쳐둔 채 김 위원장과 손을 잡으려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