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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20년 美전설의 복서 뎀프시 첫 방어전

입력 | 2008-09-06 02:58:00


“여보, 내가 고개 숙이는 걸 깜빡 잊었어(Honey, I just forgot to duck).”

1981년 3월 미국 워싱턴 힐턴호텔 앞에서 여배우 조디 포스터의 광적인 팬 힝클리가 쏜 총에 맞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부인 낸시 여사에게 이런 농담을 건넸다.

원래 이 얘기는 복싱 헤비급 세계 챔피언 잭 뎀프시가 1926년 진 터니에게 타이틀을 빼앗긴 뒤 영화배우 출신 아내 에스텔 테일러에게 했던 것. 피격 소식으로 충격에 빠진 미국인들은 대통령이 ‘농담할 수 있는 상태’라는 데 크게 안도했을 것이다.

역사상 최고의 복싱 챔피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뎀프시는 1895년 콜로라도의 매너사에서 11남매 중 아홉째로 태어났다. 16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화물열차의 노무자, 광부 등으로 일하던 그는 돈벌이가 되는 자신의 진짜 능력을 발견했다. 주먹질이었다.

술집에서 내기 권투로 푼돈을 벌던 그는 1914년 뉴욕에서 진짜 링에 올랐다.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 싸우던 다른 선수들과 달리 그는 상하좌우로 상체를 격렬히 움직이며 타격하는 ‘뎀프시 롤’이란 기술로 팬들을 매료시켰다.

KO 행진을 이어가던 그에게 챔피언에 도전할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세계 헤비급 챔피언은 제스 윌러드. 키 186cm, 몸무게 85kg인 뎀프시와 200cm, 111kg인 윌러드의 경기를 당시 언론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보도했다. 경기를 앞둔 심정을 묻는 기자들에게 뎀프시는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싸운다”라고 말했다.

1919년 7월 오하이오 주에서 열린 경기는 시작과 동시에 이런 예상을 무색하게 했다. 뎀프시는 1라운드에만 윌러드를 7번 다운시켰다. 이가 부러지고 턱이 깨진 윌러드는 4라운드에 기권했다.

‘매너사의 난폭자(Manasaa Mauler)’ 뎀프시는 챔피언에 등극했고 최초의 복싱 스타로 떠올랐다. 1920년 9월 6일에는 빌리 미스크를 상대로 첫 방어전을 치렀다. 3라운드 KO승.

1921년 3차 방어전에서는 프랑스 선수 조르주 카르펜티에와 격돌했다. 뉴저지에서 열린 이 경기의 흥행수입은 사상 처음 100만 달러를 넘어섰고 미국 전역에 라디오로 생중계됐다.

터니에게 질 때까지 6년간 타이틀을 지킨 그는 1927년 터니에게 재도전해 실패하자 은퇴했다. 통산 전적 80전, 60승(51KO), 6패, 8무승부, 6무판정 경기.

은퇴 후에는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음식점을 차렸고 ‘골리앗’ 윌러드와 평생 절친한 친구로 지냈다. 1983년 세 번째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88세의 나이로 조용히 숨졌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