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동아광장/조경란]꿈 꿀 권리

입력 | 2008-07-11 03:00:00


평소에는 잘 읽지도 않던 공포소설들을 꺼내 쌓아놓고 있는 걸 보니 바야흐로 여름이 시작된 모양이다. 더위와 습도에 몸도 마음도 지치기 쉬운 여름에는 베개를 가슴에 붙이고 방바닥에 누워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공포소설을 읽는 것만 한 피서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세계적으로 공포소설의 대가라고 하는 스티븐 킹을 내가 즐겨 읽게 될 줄 몰랐는데, 그건 전적으로 여동생의 편지 한 통으로 시작하는, 유년시절의 상처와 추억을 그린 그의 너무나 아름답고 슬픈 단편소설 ‘사다리의 맨 마지막 단’과 그 단편이 실려 있는 책의 서문 때문이다.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자, 그럼 이제 우리 두려움에 대해서 한번 말해보자.’ 잘 짜여서 돌아가던 일상의 어떤 것들이 왜 가끔씩, 그것도 아주 갑자기 놀라운 일이 되어버리는지, 바로 그러한 변화의 방식에 대해서 말이다.

두려움이라니. 나는 설렁설렁 책장을 넘기다 말고 저절로 몸을 세워 책상 의자에 바로 앉게 되었다. 내가 쓰는 소설에 큰 주제가 두 가지 있다면 하나는 소통에 관한 것이며 다른 한 가지는 바로 이 두려움에 관한 것이다. 어느 때는 이것이 하나가 되어 ‘소통에 대한 두려움’이랄까, 뭐 그 비슷한 게 되어버리는 게 사실이지만.

희망 찾게 하는 두려움의 역설

수년 전에 세계 37개국에서 온 작가들과 미국에서 석 달 동안 국제문예창작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중 이집트에서 온 작가를 만났을 때의 일이다. 누군가 소설을 쓸 때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갖느냐고 질문했을 때 그와 나는 거의 동시에 ‘fear’, 두려움이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낯을 몹시도 가리는 내가 그 이집트 작가에게는 스스럼없이 친밀감을 느낀 것은 아마 그 대화 이후였던 것 같다. 우리는 이따금 죽음에 관해 상상해봐야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는 것, 욕심이 줄어든다는 것, 그리고 두려움에 관해 생각해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삶의 의지, 희망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는 것에 동의했다.

좋은 공포소설은 대부분 우화적이며 다층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두려움이라는 주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두려움으로 가득 찬 오늘날의 현실 세계를 가장 예리하게 통찰하는 천재적인 작가라는 평을 듣는 스티븐 킹이 자신은 무시무시한 것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으며 ‘이불 밑에 있는 어떤 것’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고백할 때는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했다.

어렸을 적부터 계단에서 자주 넘어져 크고 작은 상처가 있는 나로서는 성년이 된 지금도 계단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며 지하에 대한 두려움, 역시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이러한 개인적 두려움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하고 복잡한 두려움에 대한 관심은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도시가 잃어버린 것, 사라진 것, 다시 주워야 할 것들, 그것들을 모아 ‘소설’이라는 인공물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처럼 그 인공물의 핵심적인 주제가 되곤 하는 것이다.

최근에 펴낸 소설집 중 표제작인 ‘풍선을 샀어’는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한 청년과 노처녀, 이 두 사람이 서로의 두려움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린 단편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청년에게 이렇게 말한다. 뿌리를 돌보듯 자신의 어려움과 두려움을 돌보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는 스스로 가진 권리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수 있게 된다고.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권리, 저항할 권리, 그리고 꿈을 꿀 수 있는 권리.

꿈 없다면 이 시대 어찌 견딜까

유가와 환율은 급등하고 촛불집회는 타결점을 찾지 못한 채 두 달이 가까워지도록 지속되고 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고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킬 수 있는 권리. 그런 정당한 권리에 대해서 꿈이라도 꾸지 않는다면 견디기 힘든 날들이다. 누군가는 이 세상에서 오직 사랑만이 추락을 멈출 수 있는, 중력의 법칙을 부정할 만큼 강력한 단 한 가지라고 말했지만, 요즘의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는 말 대신 ‘꿈’이라고 은근슬쩍 바꿔 읽고 싶은 것이다.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