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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자기 실패로부터 배워야”

입력 | 2008-05-31 02:52:00


국회개원 60년 헌정 60년 박관용 前 국회의장

“靑참모들, 대통령에 바른 정보 전달하길

적절한 타이밍에 다양한 인사가 바람직

국회법에 개원날짜 법으로 정해놨는데

처음부터 안지키면 18대국회 장래없어”

18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30일. 16대 후반기 국회의장을 끝으로 현실정치를 떠난 박관용 전 의장을 만나 18대 국회에 거는 기대와 최근 정국 상황에 대한 조언을 들어봤다. 인터뷰 시작과 함께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며 준비한 메모를 꺼내든 박 전 의장은 1시간 동안 현실 정치에 대한 쓴소리와 함께 후배 정치인들이 염두에 둬야 할 일을 자상하게 조언했다.

―정치 원로로서 18대 국회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국회는 입법기관이다. 스스로 준법정신을 갖고 법과 원칙을 지키는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도 회의만 하면 고함이 터지고 단상 점거 등 충돌이 자주 일어난다. 국회법만 제대로 지키면 정상적인 국회를 만들 수 있다. 다수당의 강압 처리와 소수당의 물리적 저항으로 국회법을 무력화해서는 안 된다. 국회 운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와 토론 그리고 타협이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와 독재체제를 거친 역사적 배경 때문에 타협을 굴복이나 변절로 생각하는 잘못된 경향이 있다. 토론 결과에 따라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국회가 돼야 한다.”

―후배 의원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

“당론에 전적으로 좌우될 것이 아니라 의원 각자가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자율성과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의원 스스로 전문성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의장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여야 대립 때 의장이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

―18대 국회 원 구성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과거에도 원 구성이 제때에 안돼 11월까지 개원을 못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국회법에 국회 개원 날짜를 정해 놨다. 국회가 법에 정해놓은 개원 날짜를 지키지 않는 것은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사안과 원 구성을 연계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 개원부터 국회법을 지키지 않으면 18대 국회는 장래가 없다.”

―‘다시 탄핵이 와도 나는 의사봉을 잡겠다’는 회고록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탄핵의 교훈은 무엇이라고 보나.

“2004년 탄핵 사건은 정치 역사적으로 큰 교훈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법치주의 확립이다. ‘대통령도 법 아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사건이다. 그러나 일부 방송은 국회가 엄청난 잘못을 한 것처럼 몰아쳤다. 그 결과 17대 총선에서 민의를 왜곡시켰다. 탄핵은 개헌과 마찬가지로 국회의원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다. 그만큼 중요한 국회의 결정이 몇몇 방송에 의해 부정되는 일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당시 방송의 보도 행태를 되짚어 보고 반성이 있어야 한다.”

―취임 100일도 안돼 고전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조언한다면….

“정책이 성공하려면 추진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중요하다. 그런데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쇠고기 협상 같은 아주 미세하고 단순한 문제가 원인이 됐다. ‘국민 대다수가 선택한 보수 대통령’, ‘노무현이 아닌 이명박’이라는 것만 가지고도 한미 정상회담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도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쇠고기 협상을 희생시킨 것처럼 비치게 한 건 잘못이다. 대통령은 자기의 실패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원인이 뭔지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 핑계 대고 촛불시위 핑계 대서는 안 된다.”

―청와대 비서실장 시절 경험에 비춰 대통령 참모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대통령 참모들은 왜 청와대에 있는지부터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만약 대통령이 잘못된 길로 가면 바른 길로 인도할 줄 알아야 한다. 비서실은 너무 복종형이 되면 안 된다.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어야 한다. 청와대 참모들은 전문성과 경험도 필요하지만 대통령에게 바른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인적 쇄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총리와 장관 인사 문제는 다양한 방법을 써야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을 앞두고 ‘대통령 직을 걸고 쌀을 지키겠다’고 했지만 협상 결과 이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 농민과 학생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저항이 본격화될 무렵에 김 전 대통령이 갑자기 황인성 총리를 이회창 총리로 교체했다. 나도 깜짝 놀랐다. 그런데 이후 쌀 개방으로 인한 시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적절한 타이밍에 다양한 인사를 통해 국정을 이끌어 가야 한다.”

―한나라당 고문으로서 최근 당 상황을 어떻게 보나.

“정치가 안정되지 않으면 경제 살리기를 비롯해 다른 문제들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친박 복당 논란이 일고 있는데 당의 노선에 맞는 입당 희망자는 모두 받아들여 하나로 만들면 된다. 친박 인사들이 들어오면 당내 갈등이 더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불안한 정치 상황 속에서 대통령이 하고 싶은 일 못하는 것보다는 끌어안아야 한다.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수시로 만나 논의하면서 정치를 안정시키면 훨씬 더 쉽게 국정을 이끌 수 있다.”

―평소 남북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남북관계는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이 대통령이 대북관계에 대한 기본적 원칙은 제대로 정했다. 북한의 변화와 개혁 개방을 이끌어내려는 것인 만큼 진중하게 참고 견뎌 나가야 한다. 기본 원칙을 지켜야지 흔들리면 안 된다. 미국과 북한이 접근하면서 한국이 소외될까 우려하는 시각이 있지만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우리대로 원칙을 가지고 나가면 된다. 대북 식량 지원도 우리 기준에 따라 주면 된다. 북한이 긴장을 조성하는 것은 남남 갈등을 조장해 대북 정책을 친북적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터뷰=김차수 정치부장

정리=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 박관용 전 국회의장

△1938년 부산 출생 △1957년 부산 동래고 졸업 △1960년 부산 4·19 학생대책위원회 위원장 △1961년 동아대 법정대 정치학과 졸업 △1967년 이기택 의원 비서관 △1977년 신민당 원내총무실 국회전문위원 △1981년부터 11∼16대 국회의원(6선) △1993년 김영삼 대통령 비서실장 △1994년 김영삼 대통령 정치특별보좌관 △1997년 신한국당 사무총장 △1998년 한나라당 부총재 △2002년 한나라당 총재권한대행 △2002년 제16대 후반기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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