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쇼벨 프랑스 파리정치학교 사회학 교수가 프랑스 68혁명 세대의 시대적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68세대는 풍요를 누렸지만 이를 다음 세대에 전해 주지 못한 ‘이기적인 세대’”라고 말했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20세기 최대 풍요-복지 누렸지만 대물림엔 실패”
《“68세대는 부모 세대가 어렵게 이룬 성장의 결실을 누린, 20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행복한 세대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자녀 세대에는 자신들보다 못한 경제를 물려주었죠. 결과적으로 이기적인 세대였다고 할까요.” 루이 쇼벨 파리정치학교(시앙스포) 사회학 교수는 프랑스 68혁명 세대의 시대적 특징을 이같이 설명했다. 세대론과 사회계층론을 접목시키며 주목을 받아 왔고 라디오에서 대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프랑스 대중에게도 인지도가 높은 그를 지난해 말 만났다.》
―프랑스 사회의 세대별 특징을 예리하게 분석해 오셨습니다만, 68세대에 공통된 경험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68세대는 1945∼1950년에 태어난 첫 베이비붐 세대입니다. 전후에 태어나 전쟁의 고통을 알지 못하고 ‘번영의 30년’(1945∼1975)에 풍요를 누리며 성장했죠. 대학 시절 1968년의 경험을 통해 성 관념 등 도덕관의 근본적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들은 실업률 제로의 상황에서 취업했으며 회사에서는 임금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었고 가파른 승진을 했죠. 1981년 사회당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을 당선시켜 복지의 확대를 이뤘습니다. 연금 100%를 받고 2005년부터 퇴직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20세기 프랑스 역사상 가장 행복했던 세대입니다.”
―68세대를 그 부모 세대, 그리고 그 자녀 세대와 비교한다면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68세대의 부모들은 대체로 1910∼1915년에 태어났습니다. 이들 중 약 4분의 1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부모를 잃었고 4분의 1은 부모가 부상자였습니다. 젊은 시절을 1, 2차 대전 사이의 경제적 위기 속에 보냈고 대개는 2차 대전에 참전했습니다. 68세대와 달리 100% 연금 혜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들의 손자 세대인) 68세대의 자녀들은 1975년경부터 태어났습니다. 이들은 취업 때부터 저성장의 후유증을 겪고 있습니다. 대학을 나와 평균 2, 3년간 실업을 경험하고 23세가 넘어서야 비로소 취직해 연금을 불입하기 시작하죠. 연금개혁에 따라 연금 불입 기간은 40년으로 늘었고 45년까지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미 많은 젊은이가 장기실업 때문에 연금 불입 기간을 채우기를 포기했습니다.”
―68세대는 이기적이었습니까.
“68세대의 이념이 어떻든, 그 실제 결과를 놓고 보면 후속 세대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념과 실제에 괴리가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68세대의 이념을 평가하지만 나는 그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68세대는 후속 세대에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까.
“68세대는 정계에도 대거 진출했습니다. 유럽 정치의 특징은 68세대가 정치권에 대거 진출한 이후 물갈이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연령별 의원 분포를 조사해 보면 1980년대에는 40대 1명당 60대 1명이었는데 지금은 40대 1명당 60대가 무려 9명입니다. 이러다 보니 세대 간 경쟁관계가 성립하지 못하고 사회체계 자체가 늙은 세대, 즉 68세대에 유리하게 돌아갑니다.
지난 20년간 전 세계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를 비롯해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젊은 세대는 신기술을 갖추고 있지만 유럽 대륙에서는 이를 인정받지 못합니다. 세대 간에 진정한 경쟁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68세대는 그 자신이 일으킨 혁명으로 스스로 혜택을 봤습니까.
“1968년을 전후해 누구나 쉽게 대학에 가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68세대는 그전 세대와 달리 대거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했습니다. 이들은 사회에서 대학 학위가 가진 희소가치를 떨어뜨리지 않고 그 학위에 상응하는 높은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학 학위 소지자의 수가 수십 년 동안 누적된 오늘날 그 학위는 가치가 없어졌습니다. 젊은이들은 대학을 나와도 그에 상응하는 직장을 찾지 못합니다.”
―한국에도 386세대가 있습니다. 이들도 사회 변혁을 주도했고 경제 성장률이 높은 시대를 살았는데….
“경제발전을 겪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사회학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경제가 발전할 때 젊은이들이 바라는 요구 수준은 그 발전의 속도보다 더 높아집니다. 사회운동을 일으키는 것은 그 같은 격차이지, 경제성장의 절대적 수준이 아닙니다.”
―68세대는 아버지 세대의 가치에 불만을 느끼고 68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68세대의 가치에 도전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68세대의 가치를 따르고 있죠. 추구하는 가치에 있어서는 분명히 두 세대 사이에 연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적 측면은 다릅니다. 68세대는 실질 임금이 상승하는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이혼하고 재결합하는 것을 반복하면서도 여러 자녀를 거느릴 수 있었으나 지금 세대는 그럴 경제적 능력이 없습니다. 물가가 서너 배 뛰는 동안 월급은 고작 20%가 올랐죠. 가치관은 자유로운데 이를 뒷받침해 줄 물질적 기반이 없습니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68년 이후 학생선발권 봉쇄 프랑스 고등교육 파행 불러”▼
학생시위 도화선 낭테르대 오데우 총장
낭테르대는 68혁명 당시 학생 시위의 도화선이 됐던 현장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파리10대학으로도 불리는 이 대학의 올리비에 오데우(사진) 총장에게서 68혁명이 프랑스 교육에 가져온 영향을 들었다. 2003년부터 총장을 맡고 있는 그는 “1968년 5월 운동의 영향으로 대학이 학생을 선발할 수 없게 된 것이 프랑스 고등교육의 파행을 초래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에서 수업 방해, 강의실 점거 등은 1968년 낭테르대에서 처음 시작됐습니다. 최근에도 대학개혁법을 둘러싸고 낭테르대에서 학생들이 건물을 봉쇄했는데요.
“학생들이 스스로의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강의실을 사용하는 것은 학생들의 권리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건물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봉쇄’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게다가 수만 명의 학생 중 고작 600∼800명이 회의를 열어 결정한 것입니다. 나는 총장의 권한으로 두 차례에 걸쳐 경찰력을 동원해 봉쇄를 풀었습니다.”
―68혁명이 대학에 미친 영향은 무엇입니까.
“68혁명으로 교수만이 대학을 운영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1969년 에드가 포르 교육부 장관이 제정한 법에 따라 이후 교수, 대학 직원, 학생이 모두 참가하는 협의체가 생겼습니다. 당시 교수들은 이 제도가 대학을 정치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대학의 자율은 약간 커졌습니다. 그러나 재정의 자율권이 주어지지 않은 것이 한계였죠. 최근 대학개혁법은 재정의 자율권도 부여했습니다.”
―1968년 이후 프랑스 대학은 입학생을 뽑을 때 학생을 선별(selection)할 수 없다고 하는데….
“프랑스의 고등교육은 그랑제콜(grandes ´ecoles·대학과정에 해당하며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특수학교)과 대학을 모두 포함합니다. 대학은 선별 기능이 없지만 그랑제콜은 입학생을 극도로 선별합니다. 그러나 그랑제콜에 합격하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그랑제콜을 나온 사람은 대학의 석박사 과정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랑제콜을 나온 것만으로 높은 대우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어렵지만 석박사 과정으로 올라가면서 더 어려운 선별 절차를 거칩니다. 즉, 외국에서는 좋은 학생을 뽑아 박사까지 키우는 과정이 존재하지만 프랑스는 그렇지 못합니다.”
―대학에선 어떻게 선별 기능을 없앴습니까.
“1960년대 학생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대학 정원을 제한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한국의 수능 격인) 바칼로레아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1967년 크리스티앙 푸세 교육부 장관은 여러 가지 선별 절차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런 불만이 1968년 혁명의 한 요인이 됐습니다. 선별을 없앴다기보다 도입하지 못한 것입니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