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여기저기서 제2의 경제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부쩍 커지고 있다. 단기외채의 비중이 1000억 달러를 넘어섰고 가계부채가 기록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원화가 지속적인 절상 기조를 보임으로써 수출 기업의 경영난도 가중되고 있다. 최근의 화두인 부동산 담보대출의 증가 추세 역시 녹록지 않아 보인다. 급기야 경제정책의 수장인 부총리가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언급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현재의 상황이 제2의 위기를 초래할 만큼 위태로운 상황인가를 꼭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위기의 징후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대표적인 것이 이자율과 환율의 부조화 문제다. 자본시장이 개방된 경제에서 이자율과 환율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우리의 역대 정부는 전통적으로 저금리, 고환율 정책을 고집해 왔다.
그런데 이 조합이 최근 들어 더는 버티지 못하는 국면에 처하게 됐다. 저금리 정책의 결과로 풀려난 엄청난 유동성은 전국을 부동산 투기의 광풍으로 몰아넣었다. 이에 따라 많은 외화자금이 투기수익을 노리고 국내로 유입되었는데 이 자금이 고환율 정책 때문에 원화절상으로 이어지지 않고 새로운 유동성 팽창 요인으로 작용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펀더멘털이 아귀가 맞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 징후는 금융기관의 방만한 경영에서 볼 수 있다. 국내 금융기관은 과거의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울 줄 모르는 단세포동물이다. 우선 신용카드사를 보자. 미녀 모델을 앞세워 대학생을 싹쓸이하여 현금 서비스로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루다가 쫄딱 망한 것이 불과 몇 년 전인데 지금은 정유사 할인이나 마일리지 등을 도구로 또다시 출혈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저축은행 역시 불안을 이부자리처럼 깔고 덮고 생활한 지 오래다. 아마도 부동산 경기가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이쪽에서부터 파열음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은행산업의 독과점화 역시 위기의 증폭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은행과 외환은행의 합병은 예금보험의 논리를 휴지로 만들고 경제 전체를 뒤흔들 공룡 은행의 탄생을 알리는 이벤트였다. 다행히 지금은 이 거래가 일단 수면 아래로 잠복한 상황이지만 완전히 물 건너갔다고 자신하기는 이르다.
경제위기 또는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최대의 피해자는 누가 될 것인가. 지난 외환위기 때는 기업이었지만 이번에는 가계가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당시에는 재벌기업의 부채비율이 1000%에 육박하던 것이 문제였지만 이번에는 500조 원이 넘는 가계부채가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신용불량자나 잠재적 파산자에 대한 구조조정이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가계부문은 엎친 데 덮친 격의 이중고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편으로 위기의 가능성을 줄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만에 하나 위기가 도래할 경우 충격을 완화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위기의 가능성을 줄이는 경제정책으로는 이자율과 환율의 정합성 강화, 금융감독 강화, 금융산업의 독과점화 방지 등을 생각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완충장치다. 일은 언제나 잘못될 수 있고 연착륙에 대한 시도는 종종 경착륙이나 추락으로 급변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부동산 담보대출이 부실화될 경우 이를 효과적으로 채무 조정할 수 있도록 통합도산법상의 개인회생 부분을 정비하고, 개인채무자의 노예화를 방지하기 위해 이자제한법의 부활을 서둘러야 한다.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정쟁을 중지하고 완충장치와 관련한 민생 입법에 나서야 한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