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땅’ 아프리카에 평화와 번영을 심으려는 한국인이 늘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아프리카에 선교, 물자 원조를 시작한 국내 비정부기구(NGO)들은 지금은 현지의 수자원 개발, 교육사업에까지 인력을 보내고 있다.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기아대책)는 케냐 우간다 등 5개국에 22명, 굿네이버스는 이집트 에티오피아 등 5개국에 10명, 월드비전은 1, 2명을 아프리카에 파견해 현지인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본보는 국제구호단체인 기아대책과 함께 11월 27일∼12월 5일 아프리카 동부의 수단, 우간다, 케냐, 르완다, 부룬디 등 5개국을 방문해 원조활동을 하는 한국인들을 만났다. 이들은 돈으로만 하는 단발성 지원이 아니라 자활을 가능케 하는 지속가능한 원조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키워드는 물 공급과 교육이다.》
구호단체-선교사들 1년여 물탱크 공사
콸콸 소리와 함께 종족살육 총성 멈춰
2일 아프리카 수단 남부의 보마. 여섯 개의 거대한 물탱크 수도꼭지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자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날 국제구호단체인 ‘팀앤팀’ 김두식(41) 선교사와 코비 장군 등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 5000L짜리 물탱크 앞에서 ‘수자원 개발 준공식’을 열었다.
코비 장군은 “부족 간 ‘물 전쟁’으로 서로 죽이고 죽던 우리에게 한국인들이 평화를 가져다줬다”며 김 선교사를 덥석 끌어안았다.
○ ‘물 전쟁’, 끊이지 않던 총성
수단 남부 보마의 가장 낙후된 지에마을에서 팀앤팀 대표 이용주 선교사가 펌프를 설치해 지하수를 뽑아낸 뒤 마을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사진 제공 기아대책
이 지역은 건기(10월∼이듬해 2월)가 되면 총성이 끊이지 않았다.
물탱크가 설치되기 직전에도 산 위쪽과 아래쪽에 사는 보마인 간의 총격전으로 두 명이 숨졌다. 산 아래쪽 주민들이 물을 얻기 위해 샘물이 있는 산으로 올라가자 위쪽 사람들이 격분해 총격전을 벌인 것.
보마 지역에서 가장 낙후된 곳은 케냐에서 넘어온 이민족인 마사이족이 모여 사는 ‘지에 마을’. 이 마을 사람들은 다른 부족의 경계 때문에 물을 얻으러 쉽게 나가지도 못한다.
지에 마을에는 한국인이 설치한 지하수 펌프가 하나 있지만 그나마 주변에 소와 사람의 배설물이 뒤섞인 것이 있어 주민들은 오염이 우려되는 물을 그대로 마시고 있다.
케냐의 물 전쟁은 더 심각하다. 2005년 7월 케냐 북부 마사빗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90여 명의 아이와 선생님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수인 보란족 마을에서 소수인 가브라족이 소를 훔치자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총격전으로 보란족 마을 지도자가 숨졌다. 이에 보란족은 꼭두새벽부터 가브라 마을의 한 초등학교를 점령해 학생과 선생님들을 몰살시켰다.
근본 원인은 물이다. 가축을 훔친 이유는 보란족의 가축들이 지나치게 물을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이를 경계한 데서 비롯됐다.
○ 물 공급으로 평화를 만든 한국인
그러나 올해 3월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총성이 울리지 않았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기아대책의 자금으로 팀앤팀의 전문 인력이 2002년부터 ‘평화’를 가져다준 것.
2002년 한국의 물 개발 전문가들은 산지에 있던 계곡물이 마을에 도달하기 전에 지하로 유입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은 이 물이 지하로 빠지기 전에 마을로 끌어오는 작업을 시작했다. 길이 6km 이상의 파이프를 연결해 중간 지점에 일단 계곡물을 모았다.
산을 타고 내려오면서 험한 계곡 사이에 파이프를 설치했고, 첩첩산중에 모래와 시멘트를 운반해 물 저장소 4개를 만들어 이 저장소와 마을의 물탱크를 파이프로 연결했다.
1년이 넘게 공사한 끝에 올해 3월 1단계 공사를 끝냈고 마을 사람들은 건우기와 관계없이 산꼭대기의 샘물을 얻을 수 있게 됐다. 2, 3차 공사도 진행 중이다.
케냐에서는 2002년부터 마사빗에 머문 최인호(36) 목사와 10월 투입된 수자원 전문가 최인혁(34) 목사가 최근 현지 조사에 나섰다.
현재 월드비전, 기아대책, 굿네이버스 등 구호단체들이 수단과 케냐에서 수원을 찾아 파이프로 연결하는 대규모 공사를 하고 있으며 우간다 에티오피아 등 곳곳에서는 지하수를 펌프로 끌어내는 사업을 하고 있다.
기아대책 중남미·아프리카팀장 하경화(29) 씨는 “단발성 자금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궁핍의 근본 원인인 물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평화를 만들 수 있다”면서 “평화가 바탕이 돼야 정착이 이뤄지고, 경제 발전으로도 이어진다”고 말했다.
코리아 교육타운은 ‘내일을 여는 농장’
“가르쳐만 달라” 이웃나라서도 몰려와
아프리카 우간다 쿠미 은예로. 한국인이 세운 ‘조이 프라이머리스쿨’에서 이 학교 어린이들이 카메라 앞에 몰려들어 웃고 있다. 사진 제공 기아대책
19세기 말 연희전문학교 등을 세운 미국인 언더우드 선교사처럼 한국인은 아프리카에 ‘교육타운’을 건설하며 ‘아프리카의 언더우드’가 되고 있다.
1일 우간다 쿠미에 있는 쿠미대에서 졸업식이 열렸다. 졸업식장인 본관 앞 잔디밭에서는 한국인과 우간다인의 축제가 벌어졌다. 초청 가수가 노래를 부르자 우간다 사람들은 함께한 한국인과 손을 맞잡았다.
대통령 대신 참석한 우간다 교육부 장관도 한국인 총장, 재단이사장과 나란히 앉았다. 이 대학 총장은 전주 바울교회 원팔연 목사, 재단이사장은 기아대책 정정섭 대표다.
우간다 교육부 장관은 “쿠미대를 세우고 우간다의 발전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는 한국인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하며 졸업식 내내 자리를 지켰다.
○ 한국인과 우간다인의 합심
이 대학은 한국인 유형렬(48) 선교사가 아프리카의 농업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1996년에 세운 ‘아프리카지도자훈련원’에서 시작됐다.
훈련원 교육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쿠미 주민들은 한국인에게 “용지를 내놓을 테니 훈련원을 대학으로 발전시켜 달라”고 요청하며 13만 평의 땅을 기증했다.
아프리카 동북부에는 종합대학이 없고 경제적인 문제로 유학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지역 사람들은 대학에 진학할 생각도 못했다.
쿠미대는 기아 대책을 통한 한국인의 후원금과 우간다 정부의 지원 등으로 1999년 10월부터 교육을 시작했으며 2004년 12월 정식 대학으로 가(假)인가를 받았다. 내년에 정식 인가가 나올 예정.
우간다에는 국립대 5곳과 사립대가 19곳이 있으며 쿠미대가 내년 정식 인가를 받으면 우간다 사립대 중 네 번째로 정식 인가를 받는 대학이 된다.
2005년 3월 1회 졸업생을 배출한 뒤 세 번째 졸업식을 맞은 이 대학에는 700여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대학 인가를 받은 뒤 학생이 급격히 늘어나 올해 초 학생이 300여 명에 불과했으나 올해 신입생만 400여 명이 들어왔다. 내년 신입생은 1000명 정도로 예상된다.
학생의 절반인 300여 명이 생활할 수 있는 기숙사는 ‘움집’ 같은 일반 가정보다 시설이 훨씬 더 좋아 다른 나라 학생들까지 몰려들고 있다. 케냐에서 온 유학생이 전체 학생의 10%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 한국이 만든 아프리카 ‘교육타운’
쿠미대뿐 아니라 인근 조이초등학교, 은예로중고등학교도 모두 한국인이 세웠다.
조이초교는 1998년 김순옥 선교사가 세워 현재 400여 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으며 은예로중고교는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 씨 등 한국인의 후원으로 설립돼 500여 명이 공부하고 있다.
현재도 운영되고 있는 아프리카 지도자 훈련원을 포함하면 지역의 모든 교육사업이 한국인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것.
현지에서 교육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쿠미대 이상철 부총장은 “우간다에서는 ‘박사’라면 어떤 지위보다 좋은 대우를 받아 결혼식장에서 박사만 따로 모아 사진을 찍기도 하는 등 배움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면서 “이 열정이 우간다의 발전을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수단-케냐-우간다=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후원 문의
△기아대책 02-544-9544, www.kfhi.or.kr
△후원 계좌 국민은행 059-01-0536-352(예금주 기아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