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서 부시와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지난해 12월 6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오른쪽)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WHO 사무총장은 어느 국가를 방문하든지 국가원수를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 AP
아난 유엔총장 접견이종욱 WHO 사무총장(오른쪽)이 지난해 10월 6일 조류독감과 관련해 스위스 제네바 WHO를 방문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고 있다. AP
쓰나미 피해지역 방문이종욱 WHO 사무총장이 고뇌하는 표정으로 지난해 1월 지진해일(쓰나미) 피해를 본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도시 반다아체를 둘러보고 있다. 로이터
'아시아의 슈바이쳐'가 스러졌다.
22일 사망한 이종욱 WHO 사무총장은 국제기구의 수장을 지낸 첫 한국인이다. 그러나 그의 삶은 '권력'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항상 힘없고 가난한 서민과 의료 사각지대의 빈민을 향했다.
1970년대 서울대 의대 재학시절 내내 그는 경기 안양 라자로마을에서 한센병(나병) 환자를 돌봤다. 평생 반려자가 된 일본인 동갑내기 레이코 여사도 그 때 만났다. 그는 가톨릭신자로 한국에 봉사활동을 나와 있던 레이코 여사와 단출한 살림을 꾸렸다.
여느 의사와 달리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돈을 벌기 위해 개업을 하지 않았다. 잠시 춘천의료원에서 환자를 돌봤지만 그 역시 봉사의 차원이었다. 부부는 바로 태평양의 사모아 섬으로 날아가 새로운 봉사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미국 하와이대에서 공중보건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한센병을 퇴치하려고 태평양의 피지와 사모아를 다시 찾았다.
그러다 WHO와 첫 인연을 맺게 됐다. 1983년부터 피지에서 WHO 서태평양 한센병자무관으로 근무하면서부터. 이어 1991년부터 1998년까지 그는 WHO의 서태평양지역사무처 질병예방국장, 관리국장을 역임했다. 이어 예방백신사업국장을 거쳐 세계아동백신운동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2003년 1월 그는 7차례에 걸친 접전 끝에 WHO 사무총장에 당선됐다. 당시 WHO는 그의 당선을 '인류애의 승리'로 치켜세웠다. 그는 "담담하다"고 소감을 말했지만 그와 함께 일해온 결핵국의 직원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울렸다. 그들은 이 총장의 헌신적인 인류애와 봉사정신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그가 2000년 결핵국장을 맡으면서 결핵국의 활동은 크게 두드러졌다. 19개 국가를 대상으로 결핵퇴치 사업을 본격 가동했다. 그 과정에서 북한에도 6만 명분의 결핵약을 공급하기도 했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에 직원 모두가 감복했다.
그가 WHO 사무총장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한국의 전방위 외교 노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평생을 의료 사각지대에서 봉사를 해 왔던 그의 진심이 전달됐기 때문이란 해석이다.
이웃집 아저씨 같은 풍모의 그이지만 일처리 과정에서의 추진력은 놀랍다는 주변의 평가다. 예방백신 사업국장 시절 그는 소아마비 유병률을 세계인구 1만 명당 1명 이하로 떨어뜨렸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엄청난 성과였다. 그는 이후 '백신의 황제'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총장은 최근 조류독감(AI)의 발병을 경고하고 전 세계적인 금연 문화를 확산시키는 등 그 어느 때보다 정력적으로 활동해 왔다.
그는 사무총장이 된 뒤에도 2000cc짜리 소형 하이브리드 승용차를 고집할 정도로 소탈한 성격이다. 또 식사는 항상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3월 29일 한국을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에는 "북한의 열악한 의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기초의약품 생산시설을 짓는데 필요한 1000만 달러 모금운동을 전개하겠다"며 남다른 동포애를 보여주기도 했었다.
WHO총회를 위해 제네바를 방문중인 한국대표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는 평소 고혈압 증세를 보였었다. 그래서 이번 WHO 총회 준비를 그 어느 때보다 힘들어했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그는 "내가 할 일이다"며 몸을 아끼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지금 전 세계의 보건의료인들이 그가 없는 WHO를 걱정하며 슬픔에 잠겨 있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이종욱 WHO총장 별세
한국인 최초의 유엔 기구 수장인 이종욱(사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22일 오전 7시 43분(현지 시간) 사망했다고 WHO가 공식 발표했다. 향년 61세.
WHO는 22일 홈페이지를 통해 “이 총장이 지난 주말(20일) 입원해 뇌 속의 혈전 제거 수술을 받았으나 22일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이 총장은 20일 오후 집무 도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혈전을 제거해야 한다는 의료진의 결정에 따라 수술을 받았다.
이 총장의 부인 가부라키 레이코 씨와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을 지낸 동생 이종오(사회학) 명지대 교수, 이종구(사회학) 성공회대 교수가 고인의 임종을 지켜봤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