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한반도 외교안보 전문가 9人 전망

입력 | 2005-12-31 03:00:00


《새해 한반도의 외교안보 환경에 대해선 희망과 우려가 엇갈린다. 북한 핵문제가 해결돼 경제성장을 위한 안정적인 여건이 조성되길 바라는 기대와 함께 북한과 미국의 관계 악화, 한국과 일본의 갈등 심화 등을 걱정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본보는 외교안보 전문가 9명을 상대로 지난해 12월 23∼26일 전화인터뷰를 실시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한미관계 △한일관계 △남북관계 △국방 등 5개 분야에 대한 새해 외교안보 기상도를 물었다. 그 결과 전반적으론 ‘주로 구름이 낄 것’이라는 응답이 많았으나 국방 분야에선 낙관적인 전망이 우세했다. 분야별 기상도를 살펴본다.》

▼6자회담

북한과 미국이 경수로 및 달러 위조 문제로 격돌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북한의 태도와 함께 미국의 핵문제 해결 의지 부족도 문제로 지적됐다.

고유환(高有煥) 동국대 교수는 “4차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 이후 북한과 미국에서 강경한 목소리가 높아졌다”며 “새해에는 북한이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에 따라 6자회담의 향배가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현인택(玄仁澤) 고려대 교수도 “북한이 공동성명에 합의는 했지만 진실로 핵폐기를 하겠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밝혔다.

김성한(金聖翰)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시간이 북한 편이었던 종전의 상황이 바뀌어 이제는 북한이 뭔가 액션을 취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며 갈수록 여건이 나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남북관계

정부가 북한을 감싸는 태도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바로 그 때문에 남북관계가 크게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란 견해가 우세했다.

고유환 교수는 “평화체제 구축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할 가능성이 있고 하반기에는 열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류길재(柳吉在) 경남대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정부는 새해에도 북한 눈치를 보고 북핵 문제에서 북한을 옹호할 것”이라며 “북한과의 대화와 교류에 목을 맨다고 해서 남북관계가 잘되는 게 아닌 만큼 원칙을 세우고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방관계

현인택 교수는 “자주국방은 당연하지만 한미동맹을 훼손하는 것은 자주국방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며 “정부가 한미동맹 재조정 문제에서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으므로 한미동맹과 연계된 자주국방이란 목표를 발전시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박용옥 교수는 “정부는 2005년 한미 군사관계에서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주요 현안에서 마찰이 빚어져 상호 신뢰를 확인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며 “새해에도 현상유지 정도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미관계

정부는 ‘이상 무(無)’를 되뇌고 있으나 전문가들의 견해는 달랐다.

남성욱(南成旭) 고려대 교수는 “과거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미숙함과 부작용이 많이 발생했다”며 “한국 정부의 대미정책이 크게 변하지 않는 한 미국과의 진통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효(金泰孝) 성균관대 교수는 “거창하게 중장기적 비전을 얘기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며 “한미 간 대북정책 공조 분위기를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지만 새해에도 미국은 기존의 원칙과 전략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용옥(朴庸玉)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는 “정부가 미국이 남북한의 특수관계를 이해해 주기를 바라면서 북핵, 인권, 위폐 문제에서 국제기준을 무시하고 북한을 두둔하는 태도를 계속 취한다면 한미관계가 더욱 손상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일관계

9월에 임기가 끝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후임 문제를 변수로 보는 견해가 상당수 있었으나 큰 기대는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김우상(金宇祥) 연세대 교수는 “고이즈미 총리의 과거사 인식이 진전될 가능성이 거의 없고 일본 정계가 더욱 우경화하고 있어 관계 개선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김영호(金暎浩) 성신여대 교수는 “정부가 2005년에 관계 악화로 국익에 부담이 됐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 것”이라며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는 대신 조용한 외교로 전환해 관계가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說說끓는 ‘낮은 단계 연방제’

올해 남북관계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정계와 시민단체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처럼 정부가 북한에 ‘낮은 단계의 연방제’ 추진을 제안할 것인지 여부이다.

남시욱(南時旭·전 문화일보 사장) 세종대 석좌교수는 지난해 12월 14일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총동문회 초청 조찬강연회에서 ‘2006년 정부의 연방제 추진설(說)’을 제기했다.

또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5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열린 ‘문명과 평화 국제포럼’에 보낸 영상연설에서 “남측의 남북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통합해 통일의 1단계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은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에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한 바 있다.

두 안의 공통된 골자는 남북 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 등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보유한 상태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기구를 만들어 남북 통합의 제도화를 논의하자는 것.

낮은 단계의 연방제 추진 제안설은 정치적으로 큰 폭발력을 갖고 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국내정치 지형을 찬반양론으로 갈라놓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평화체제 구축을 명분으로 추진 중인 남북정상회담 개최와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재개 여부와 상관없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며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정상회담의 의제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정상회담을 통해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실제 추진되기는 힘들 것으로 고 교수는 예상했다.

헌법 개정과 연관된 주권과 영토 문제 등을 둘러싸고 남한 내 보수와 진보 진영 간에 심각한 갈등이 빚어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청와대와 대북 문제를 전담하는 정부 부처들도 낮은 단계의 연방제 추진설은 말 그대로 ‘설’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북핵 문제 해결과 평화체제 구축의 실현도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 두 가지 사안이 기반이 돼야 할 남북 통합의 제도화 논의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