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은 일의 가치에 따라 임금이 정해지는 ‘직무급제’가 기업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외환위기 직후 전통적 ‘호봉제’에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성과급제’를 접목한 것이 1차 임금혁명이라면 직무급제는 2차 임금혁명이라 할 만하다. 여러 기업에서 시작되고 있는 직무급제 도입은 우리 사회를 한 계단 더 높여 놓기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직무급제의 핵심은 회사에 기여한 만큼 받는 것이다. 기여한 만큼 받는 것, 또는 생산성에 따라 받는 것은 효율적이면서 동시에 정의롭다. 그것이 효율적인 것은 생산성에 따라 받을 때 모두 생산성을 높이려고 노력할 것이고 직원들이 가진 잠재력이 최대한 발휘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제도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기업은 직원의 전체적 급여 수준도 높아질 것이다.
어떤 일을 하든, 성과가 어떻든 월급을 근속연수에 따라 받는 제도는 ‘기업 내부에서의 사회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그건 잘할 수 있는 사람의 의욕을 꺾고 능력 없는 사람에게 노력할 인센티브를 줄인다. 그 결과 기업 전체의 생산성은 낮아진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그런 식으로 해서 결국은 붕괴되었듯이 기업도 예외일 수는 없다.
직무급제는 또 고령자들을 쓸모 있는 사람들로 부활시켜 준다. 사람이 어느 정도의 나이를 넘어가면 기억력도, 집중력도, 체력도 떨어져서 자연스럽게 생산성이 낮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봉대로 높은 임금을 줘야 한다면 기업은 고령자를 해고하고 싶어진다. 나이와 무관하게 맡은 일에 따라 급여를 줄 수 있다면 굳이 고령자라고 해서 내보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전통적 임금체계에서 호봉이 높은 사람은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경향이 있다. 이는 다른 누군가가 생산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다는 말이다. 직무급제가 ‘정의롭기도 하다’는 것은 그런 부정의를 고쳐서 기여한 것만큼 받게 해주기 때문이다.
직무급제가 효율적이면서 정의로운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뿌리를 내리려면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첫째는 시기심이다. 같이 입사한 사람이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것을 보고 마음 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상한 마음을 더 많은 노력으로 승화시키지 않고 상대방을 비방하고 끌어내리려 한다면 이 제도는 실패하고 만다. 경쟁의 결과에 승복하고 또 경쟁하면서 협조하는 것이 이 시대가 직장인들에게 요구하는 덕목이다.
또 다른 하나는 평가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은 특히 자신의 역량이나 성과를 몹시 관대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에 대한 조직의 평가 결과가 너무 가혹하다고 느낀다. 타인에 대한 것이든, 자신에 대한 것이든 평가란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늘 시비의 여지를 남긴다. 평가에 대한 시비가 계속된다면 직무급제는 성공할 수 없다.
지금까지 성과급제가 가장 성공적으로 뿌리 내린 분야가 영업직인 것은 영업활동에서의 생산성은 판매액이라는 숫자로 정확히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성을 객관적 숫자로 표시할 수 없는 분야에서는 평가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이 승복할 수 없다고 해서 과거의 관행을 유지한다면 회사 전체의 생산성을 높여서 전체의 임금수준을 높일 수 있는 기회도 사라질 것이다.
무엇보다도 회사와 직원 간의 관계가 거래관계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생산성보다 덜 주는 것이 부당하듯이 생산성보다 더 받는 것 역시 부당하다. 직무급제의 성공은 이 같은 사실을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