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노총 위원장 국감 증인선서 이용득 한국노총(왼쪽)과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노동부 국정감사에 출석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민주노총 이수호(李秀浩) 위원장 체제의 좌초는 이미 꼬일 대로 꼬인 노사정 관계를 더 악화시킬 전망이다.
당장 민주노총 내 온건파의 입지가 현저하게 좁아지면서 ‘힘에 의한 해결’을 외치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또 내년 1월 새 지도부 구성을 위한 조기 선거를 앞두고 각 계파가 선명성 투쟁을 벌이면 노사정 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당장 다음달 12∼19일 부산에서 열릴 예정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을 전후해 총파업 등 강력한 투쟁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현행 지도부 유임 배경=민주노총은 10일 밤만 해도 이 위원장 즉각 사퇴 의견이 우세했으나 11일 오전 회의에서 지도부를 연말까지 유임시키는 쪽으로 방침을 바꿨다.
이와 관련해 이 위원장은 “위원장 사퇴를 통해 위기를 돌파하려고 했으나 다른 집행부가 함께 사퇴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지도부 공백에 따른 혼란과 전체 노동계의 무장해제가 걱정됐다”며 “일단 비정규직 문제 등 하반기 투쟁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정기국회에 비정규직 보호 입법,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 등 정부와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노동 현안이 산적해 있는 만큼 일단 조직을 추스르며 고비는 넘기고 보자는 계산이다.
하지만 노동계 일각에서는 민주노총 내 온건파나 강경파 모두 당장 내놓을 만한 유력한 새 위원장 후보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반기 투쟁과정에서 새 인물을 부각시킬 시간을 벌기 위해 양측이 타협한 고육책이라는 것.
▽노사정 관계 파국으로 치닫나=민주노총 내 온건파와 강경파가 내년 조기 선거 승리를 위해 치열한 물밑 경합을 벌일 경우 계파 간 선명성 투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하반기에는 비정규직 문제, 노사관계 로드맵, 특수고용직 및 불법파견 문제 등 노동 현안은 물론이고 부산 APEC 정상회의까지 겹쳐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와 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노동계 일각에서는 민주노총이 실제로 극한투쟁을 벌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올해 들어 현장에서의 파업동력이 크게 약화된 데다 각 계파 간 이해관계가 달라 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다는 것.
문제는 강경파의 재부상이 예상되는 내년 1월 선거 이후다.
노동부 관계자는 “민주노총이 강경투쟁에 나서면 올해 들어 유례없는 연대를 과시해 온 한국노총도 가세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노사나 노정 관계가 앞으로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동계 신뢰부터 구축해야=민주노총 고위 관계자들의 잇단 비리 연루와 관련해 이 위원장은 이날 “기아자동차 노조 채용비리 후 혁신위원회가 구체안을 마련 중”이라며 “윤리강령을 포함해 실질적 조사기구와 징계위원회를 만드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동 전문가들은 민주노총이 올해 초 기아차 노조 간부 비리 사태 이후 1년이 지나도록 무슨 조치를 내놓았느냐고 반문한다. 구호가 아닌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
익명을 요구한 노동계 전문가는 “민주노총 등 상급 노동단체의 조직률은 11%에 불과하다”며 “이들이 비리에 연루되고 대기업 노조가 ‘집단 이기주의’로 국민의 지탄을 받는 등 지금까지의 행태에서 못 벗어나면 결국 대다수 노동자에게서 외면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기회에 노동계의 투쟁 방식을 원점에서 재고해야 한다는 비판도 많았다.
배규식(裵圭植)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국내 노동환경은 비정규직 문제, 고용 불안정, 제조업 공동화 등으로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졌는데도 노동계에는 이에 대처할 새로운 전략이 없다”며 “실제로는 현장 투쟁력도 없으면서 거칠게 자신의 의지만 관철하려는 낡은 투쟁방식은 노동계 스스로 오히려 더 큰 위기를 초래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