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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박찬희]‘공기업 비리’ 감사만으론 안된다

입력 | 2005-10-10 03:00:00


감사원이 공기업과 정부 산하기관에 대한 대규모 감사에 나섰다.

최근의 공기업 비리에 대한 소식들은 감사의 신호탄이었던 모양이다. 각종 혁신 사례가 보고되고 매년 경영평가도 했다는데 ‘뼈를 깎는 노력’은 눈가림이었던가.

‘나랏돈 해먹는 짓’을 바로잡는다니 속 시원할 수도 있지만 생각해 볼 점은 많다. 우선 공기업의 지배구조 표준을 만들고 통폐합까지 제시한다는데, 과연 감사원이 할 일인지는 의문이다. 또 ‘혁신역량’도 평가한다는데, 이 경우 그럴듯한 ‘혁신 이벤트’로 주파수를 맞추는 사람들만 출세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감사와 비리수사만으로는 공기업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감사와 수사만으로 문제가 해결된다면 옛 소련의 거대 기업들은 몰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먼지야 털면 나오겠지만 사람만 바꿔가며 문제는 계속되고 권력의 입김만 커질 수도 있다.

‘공공성 확립’을 내세우려면 먼저 ‘공공성’이 무엇인지가 뚜렷해야 한다. 하지만 공공성을 정책의 현실에서 다루는 것은 매우 어렵다. 추구할 공공성이 기관마다 나름대로 주어져 있지만 다 ‘좋은 말’이니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가 없고 우선순위도 모호하다.

특히 제도의 이상과 현실이 동떨어져서 ‘해야 할 일’과 ‘못 하는 일’이 불투명할 때는 여기저기 눈치만 보고 부담되는 일은 안 벌이게 된다. 그뿐인가. ‘좋은 말’을 갖다 붙이면 어떤 지원 요청이나 지적사항도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있다. 공공성의 명목으로 ‘좋아 보이는 일들’은 다 시킨다면 낙하산 인사와 정권의 전리품 얘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얼마나 벌 것이냐’하는 수익성 문제를 더하면 이는 ‘부실경영’과 ‘과다이익’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고도의 정치 감각 영역에 속한다. 한국토지공사의 고민이기도 하다. 토지수용가를 낮추자니 땅 주인이 모두 투기꾼은 아니고, 서민의 땅을 헐값 수용했다는 비난이 두렵다. 수익성 요구로 분양가를 낮추기가 힘드는 데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토균형 개발계획으로 전국에 사야 할 땅은 많으니 현금은 확보하되 장부상 이익만은 줄이려 한 것이다. 국책 한국산업은행의 정책금융 기능이 떨어지는 반면 회사채 발행에 치중해 증권회사 업무영역을 침범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정책금융 기능이 떨어지면 민영화를 먼저 생각해야지 업무영역만 문제 삼아선 안 된다.

비리에 대한 가장 강력한 통제장치는 역시 시장이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사람 손’과는 달리 뇌물을 못 받는다. ‘해먹는 회사’의 물건은 덜 좋고 비싸서 안 팔린다. 그런 회사에 돈과 인재가 모일 리가 없으니 처벌도 효과적이다. 물론 공기업이 필요한 영역이 있다. 문제는 ‘시장이 우선’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잊고, 나아가 그나마 존재하는 시장 기능도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 결정도 맘대로 못하는 경영자가 더 나은 사업을 할 수는 없다.

공기업 임직원이 보수를 많이 받는다고 무조건 도덕적 해이는 아니다. 복지기금과 휴게소 이권을 대충 나눠 가졌다는 것은 꼭 고쳐져야 할 문제지만 잘하는 직원은 장관보다 보수를 많이 받을 수도 있어야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시장을 넘어선 정부의 소유와 통제가 타당한지에 대한 본질적인 검토다.

공기업 형태가 불가피하다면 책임질 수익성과 공공성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경영진이 여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감시와 통제도 여기에 초점을 둬야 한다. 이런 노력이 없이 공기업만 다그치면 잠시 속 시원할 뿐 힘센 분들만 신난다. 좋은 말들 다 따라하고 힘센 곳 눈치 보느라 ‘해야 할 일’을 못하면 비리 액수의 수천 배가 넘는 ‘보이지 않는 손해’를 국민에게 끼치고 말 것이다.

박찬희 중앙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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