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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865년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 출생

입력 | 2005-06-13 03:09:00


“그녀는 고전에 나오는 봄의 화신 같았다. ‘그녀는 여신처럼 걷는다’는 버질의 찬사는 오직 그녀만을 위한 말 같았다. 안색은 빛을 받은 사과 꽃처럼 빛났고, 생각하건대 그 첫날 그녀가 창문으로 보이는 그러한 꽃 무더기 옆에 서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윌리엄 예이츠, ‘자서전’)

어느 이른 봄날 아침, 아니 봄날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창가에 선 낯선 아가씨의 얼굴이 봄날 사과 꽃처럼 투명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창백한 듯 빛나는 얼굴빛, 붉은 금빛이 도는 머릿결, 신비스러운 눈, 붉은 입술, 우아하고 기품 있는 자태, 그리고 조국을 위한 열정과 능변….

시인 윌리엄 예이츠(1865∼1939). 그는 미모의 여성 배우이자 정열적인 민족주의자였던 모드 곤(1866∼1953)을 만난 뒤 ‘정신과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그의 나이 스물셋, 곤은 스물둘. 이날 이후 그녀는 예이츠의 인생 깊숙이 파고들어 ‘압도적인 소음’을 내기 시작했다.

예이츠는 1865년 6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의 샌디마운트에서 화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림 공부를 하다 20세 무렵부터 시를 썼고 1923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20세기 최고 시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위대한 시인의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뜻밖에도 한 여성에 대한 연모였다.

하지만 사랑이 어디 뜻대로 되던가.

곤은 예이츠의 문학적 이상을 이해하지 못했고 온건한 투쟁 노선을 따르지 않았다. 예이츠는 예술가였고, 곤은 운동가였다.

예이츠는 쉰 살이 넘을 때까지 30년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청혼했지만 늘 거절당했다. 남은 것은 오직 쓰라림뿐.

‘그대여 너무 오래 사랑하지 말라. 나는 오래오래 사랑을 했다. 그리하여 뒤처졌다. 마치 옛 노래처럼.’(‘너무 오래 사랑하지 말라’)

예이츠는 못 이룬 사랑을 노래한 60여 편의 시를 남겼다.

위대한 시인치고 너무도 개인적이고 사소한 주제에 얽매였던 건 아니냐고?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사랑은 전부다. T S 엘리엇의 말처럼 “예이츠는 강렬한 개인적인 경험에서 보편적 진리를 표현했다”. 그래서 위대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