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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태 전 국방장관 “主敵개념 원칙 반드시 지켜져야”

입력 | 2003-07-06 18:55:00

조성태 전 국방장관이 3일 본보 인터뷰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 등에 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박주일기자


《한미동맹과 정전협정 50주년을 맞는 2003년 한반도는 유례없는 안보 위기를 맞고 있다.북한은 핵문제 해결을 위해 ‘벼랑끝 전술’(brinkmanship)을 구사하며 북-미 양자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를 일축하면서 선핵포기 요구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한 대북 제재 카드로 맞서고 있다. 지난해 미군 장갑차 여중생 치사사건으로 불거진 반미감정과 이에 따른 한미관계 악화는 5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봉합해 놓은 상태지만 용산기지와 미 2사단의 후방 이전이 현실화하면서 안보 공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조성태(趙成台) 전 국방장관은 3일 경기 성남시 육군종합행정학교 내 한국군사문제연구소에서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국가 지도층이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양국간 신뢰를 공고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전 장관은 “장관에서 퇴임한 후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한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미군 장갑차 여중생 치사사고로 촉발된 반미감정이 한미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여중생 사망사고는 참으로 불행하고 다시 일어나선 안 될 사고입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한미관계가 손상을 받은 것도 매우 안타깝습니다. 한미관계의 요체는 북한의 적화야욕을 막기 위한 한미동맹에 있습니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이 북한군의 야포 사정권에 놓여 있는 현실에서 자력방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한미동맹은 한국의 경제발전의 토대였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외국 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한미동맹의 견고성을 본다고 합니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난센스입니다.”

―일부 젊은 층의 반미감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가적 자존심과 자주의식을 갖는 것은 좋지만 반미감정은 한미관계에 대한 인식의 폭이 좁은 데서 나온 것이 아닐까요. 학교와 어른들이 국가관과 안보의식을 제대로 심어주지 못한 결과라고 봅니다. 앞으로 교육기관과 기성세대는 국가관 형성에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비롯한 참여정부의 지도층이 한미관계를 잘 이끌어가고 있다고 보십니까.

“한미관계는 양국의 전략적 이해가 일치할 때 공고히 발전합니다. 현재의 상황은 양국의 이해가 일치할 수밖에 없고, 이는 천운(天運)입니다. 문제는 이를 조율하는 당국자들의 신뢰에 달려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면 신뢰에 흠이 가고 한미관계는 근본적으로 훼손될 수 있습니다. 지도층이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확고하게 인식하고, 그 바탕 위에서 대미관계를 조율해 나가야 합니다. 개인의 인기나 정치적 목적으로 (한미관계를) 잘못 이용하거나 활용할 경우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노 대통령의 북핵문제 해법과 한미관계에 대한 인식을 두고 신뢰문제가 제기됐는데요.

“후보와 당선자 시절에는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면 달라집니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는 금과옥조(金科玉條)입니다. 한 마디만 실수하면 모든 게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북핵문제와 한미관계 등 국가 운명을 좌우하는 사안을 언급할 땐 10번 이상 생각해야 합니다.”

―북한은 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미 양자회담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더 이상 양보를 하지 않을 듯한데요.

“미국은 제네바합의를 실패로 보고 이번엔 뿌리를 뽑겠다는 단호한 입장입니다. 반면 북한은 계속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어 한국은 난처한 상황이 됐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럴 때일수록 ‘정도(正道)’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어떤 경우에도 북핵의 인질이 되어선 안 됩니다. 한미 공조를 더 강화하고 최악의 경우 ‘일전불사’의 각오로 나가야 합니다. 한국 정부가 전쟁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전쟁은 무조건 안 된다’고 말을 앞세우니까 미국이 못마땅해하고 대북 협상카드의 힘도 빠지는 것입니다. 통수권자가 확실한 결의를 갖고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햇볕정책을 추구한 정부의 국방장관으로서 햇볕정책의 공과(功過)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을 텐데, 북한이 햇볕정책으로 얼마나 변했다고 보십니까.

“햇볕정책은 매우 시의적절했다고 믿습니다. 남북이 극한적 군사대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선언을 한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국방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군은 어떤 상황에도 적의 도발에 대한 대비태세를 갖춰야 합니다. 남북대치 상태에서 국방이 정치적 선택에 흔들리면 안 됩니다. 군 통수권자나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군 스스로도 그 원칙에서 벗어나선 안 됩니다.”

―장관 시절 그런 원칙을 지켰다고 자신합니까.

“어떤 경우에도 군 대비태세의 이완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주적 개념의 삭제, 군 부대의 훈련강도 완화, 국방예산 삭감 등의 문제가 제기됐지만 군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남북 대치국면이 지속되는 한 이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노 대통령은 미군이 없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며 자주국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주국방의 요체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자주국방’을 ‘나 혼자 지킨다’는 ‘독자국방’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미국을 포함한 어느 나라도 ‘독자국방’을 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대부분 다른 나라와 동맹관계를 형성해 상호 안보를 돕고 있습니다. 국가이익을 동맹으로 구현할 수 있다면 그것도 ‘자주국방’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히 해 전략적 공통이해를 다져나가는 것이 자주국방의 관건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주변국의 위협을 고려한 미래전력도 구축하고, 핵심전력에 대한 독자 방위산업 역량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요즘 국방비가 적다는 말이 많습니다.

“세계 국방예산 평균은 국내총생산(GDP)의 3.5%이고 우리와 같은 분쟁대치국의 평균은 6.3%에 달합니다. 우리나라 1인당 국방비는 252달러로 미국(1128달러), 대만(472달러), 이스라엘(1673달러), 일본(301달러)보다 적습니다. 97년부터 올해까지 국가재정은 67%가 늘었지만 국방비는 27% 인상에 그쳤고, 물가인상률(23%)을 감안하면 7년간 거의 동결된 셈입니다. 한미 연합방위체제를 감안해도 21세기형 국방을 위해선 대미 의존도를 점차 줄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공중조기경보기(AWACS), 정찰위성, 공중급유기 등 첨단전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동시에 북한의 선제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양적인 군사력도 유지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방예산은 일단 GDP의 3.5%까지는 증액해야 합니다.”

정리=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서해교전 비극은 사전징후 무시하고 방심한탓”▼

99년 6월 연평해전 직전에 발생한 해군 고속정(오른쪽)과 북한 경비정의 충돌 장면.-동아일보 자료사진

햇볕정책을 추진해온 국민의 정부 때 우리 군은 북한군과 서해상에서 두 차례 교전을 했다. 휴전 후 북한군과의 첫 해상 정규전이었던 99년 6월 15일의 ‘연평해전’에서 우리 군은 북한 함정 5, 6척을 단숨에 격침하거나 대파시키면서도 7명이 경상을 입는 데 그치는 대승을 거뒀다. 그러나 2002년 6월 29일의 ‘서해교전’에서는 우리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하는 큰 피해를 보았다. 해군고속정 1척도 침몰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조성태(趙成台) 전 장관에게 “두 교전의 차이는 어디서 온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연평해전 당시의 국방장관이 바로 조 전 장관이었다.

조 전 장관은 “언급하기가 매우 조심스럽다”면서도 “연평해전 때는 북한경비정들이 연일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자 최악의 경우 그들이 선제 기습공격을 할 가능성도 높다고 판단했고, 여차하면 반격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고 있었기 때문에 완승을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해교전에 대해서는 “설마 기습공격을 하겠느냐며 초기에 방심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월드컵이 진행 중이었지만 해당 부대는 최악의 상황에 항상 대비했어야 하는데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경비정이 침범할 때마다 완전한 전투준비를 갖추는 게 쉽지는 않다”면서도 “그러나 군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며, 그 교훈은 엄청나게 컸다”고 지적했다.

조 전 장관은 “서해교전 이후 군은 스스로 많은 문제점을 분석했다고 본다”며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 같은 상황이 재발할 경우 해당 지휘관을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기습 공격을 받은 후의 대응은 훌륭했다”며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진 장병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조성태 전 국방장관은▼

국방부 핵심 정책부서와 야전지휘관을 두루 거쳤다. 65년 맹호부대(수도사단) 8연대 소대장으로 베트남전쟁에 참전했으며 정책실장 시절에는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 한미 현안을 원만히 조율했다. 현역 시절 꼼꼼하고 완벽한 업무처리로 ‘면도날’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96년 10월 육군대장으로 예편한 뒤 99년 5월 개각에서 국방장관으로 발탁됐다. 퇴임 이후 국방정책과 군사외교 분야에 대한 칼럼을 기고하는 등 군사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1942년 충남 천안 출생 △육사 20기 △국방부 정책실장(중장) △2군사령관(대장) △국방장관 △현 동국대 한남대 초빙교수, 한국군사문제연구소 연구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