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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조폭잡는 형사’ 흥행몰이?

입력 | 2003-05-29 19:57:00

최근 한국 영화의 흥행 흐름을 주도하는 형사 영화 ‘살인의 추억’과 ‘와일드 카드’(아래) - 동아일보 자료사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직 폭력배가 주름잡던 한국 영화계를 이제 형사들이 이어받았다.

‘매트릭스 2: 리로디드’의 열풍에 밀려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살인의 추억’은 전국 관객 400만 명을 돌파했고 ‘와일드 카드’도 이미 72만 명의 관객이 봤다. 장르를 짜깁기한 변칙 코미디 영화인 ‘조폭 영화’들이 주도해오던 흥행의 흐름을, 형사가 주인공인 ‘살인의 추억’과 ‘와일드 카드’가 바꿔놓고 있는 것.

드라마틱한 영화의 소재로 안성맞춤이면서도 상투성의 함정을 피하기 어려워 잘 만들어지지 않던 형사 영화중 최근 두 편이 동반 흥행몰이를 하게 된 데에는, 한국적 상황에서 장르의 특성을 잘 살렸고 관객들이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형사들을 일방적으로 미화 혹은 비판하던 이전과 달리 두 영화의 형사들은 입체적이고 인간적”이라며 “그같은 캐릭터 묘사의 진일보가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씨는 “두 영화가 할리우드 형사 영화와는 다른 장르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한다. 실제 사건을 소재로 삼은 ‘살인의 추억’에서 두 형사를 이어주는 공감의 코드는 분노다. 두 형사가 티격태격하다 우정을 쌓고 사건을 해결하는 식의 전형적인 할리우드 형사 버디의 공식과는 다르다. 두 영화들이 한국적 특성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풍성하다는 점도 이전과의 차이점.

‘조폭 영화’를 통해 폭력의 수위가 한껏 올라간 상태에서 관객들이 좀더 합법적이고 안전한 판타지를 선호하기 덕분이라는 시각도 있다. 명필름 대표 심재명씨는 “조폭 영화 붐 이후 이전보다 터프해지고 폭력의 수위가 높은 영화들이 흥행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언더 커버’ ‘스턴트맨’ 등 제작을 준비중인 형사 영화들이 있지만 영화계에서는 ‘조폭 영화’처럼 형사영화의 붐이 일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서는 낙관하지 않고 있다.

‘살인의 추억’의 투자,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 석동준 한국영화팀장은 “형사 영화는 누아르적 분위기가 강하고 우울한 정서가 깔려 있어 투자의 선호 대상이 아니다. ‘살인의 추억’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우려가 많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살인의 추억’ 등 두 편의 흥행이 조폭 코미디가 주류를 이루던 한국 영화 제작의 흐름을 바꿔놓을 것이라는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