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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약사부부 초보육아일기]모유수유

입력 | 2003-05-11 17:35:00


아내가 승민이를 키우면서 현실과 싸우다 결국 포기한 것이 있다. 바로 ‘모유 수유’다.

출산 휴가가 끝날 무렵만 해도 아내는 승민이에게 돌까지는 모유를 먹일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직장에 복귀하자마자 아내는 녹록치 않은 현실과 부닥쳐야 했다. 다행히도 아내의 직장엔 여직원 휴게실이 있어 다른 엄마들처럼 화장실에서 젖을 짜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휴게실에 전기배선이 없어 아내는 전동형 유축기 대신 배터리로 작동시키는 휴대용 유축기를 구입해 사용했다. 휴대용은 힘이 약해서 젖이 충분히 짜지지 않고 시간도 많이 걸려 불편했지만 아내는 참을 만 했다고 한다.

아내가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이런 물리적 불편이 아니라 출산과 육아 경험이 없는 주변 사람들의 호의적이지 않았던 시선이었다고 한다. 휴게실을 드나드는 여직원들은 반나체가 된 아내를 보자 당황해서 곧장 나가버렸고 아내도 어쩔 줄 몰라 했다는 것. 젖의 양이 줄지 않으려면 적어도 두세 시간 간격으로 짜주어야 하고, 한번에 15∼30분은 족히 걸리지만 아내는 ‘일은 안하고 틈만 나면 휴게실로 달려가는 아줌마’로 비쳐지는 것 같아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

“편하게 분유 먹이면 되지, 왜 그리 모유에 집착하느냐”며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회사일이 바빠서 숨 돌릴 틈조차 없거나, 업무상 출장을 가게 될 때는 더욱 젖 짜기가 힘들어졌다. 아내는 어디를 가더라도 유축기와 젖병을 챙겨서 다녔지만, 젖이 불어 웃옷을 적실 때도 젖 짤 곳을 찾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일이 많았다. 아내는 중간에 직장을 옮겼는데, 바뀐 직장에서는 탈의실에 의자가 없어 서서 젖을 짜야 했고, 여전히 전기 배선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의욕적이었던 아내도 서서히 지쳐갔다.

낮 시간에 젖 짜는 횟수가 주니 젖의 양도 점점 줄어 승민이가 먹는 양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결국 6개월이 지나자 아내는 젖을 떼고야 말았다. 아내는 한편으로는 시원하게 여기면서도 무척 서운해 했다. 자신은 최선을 다했는데 실패하고 만 데 대한 아쉬움이 컸기 때문이리라.

모유 수유율이 10%에 불과한 것을 두고 엄마들을 비난하는 분위기가 많다. 하지만 젖을 먹이는 엄마에 대한 이해도, 배려도, 시설도 없는 가운데 모유 수유의 당위성만 가지고 버티기는 너무 힘든 현실이다. 그래서 비록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지만, 6개월 동안 모유를 먹이려 눈물겹게 노력한 아내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