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이라서…74세 첸치천 외교首長 내놔▼
초대 외교부장인 저우언라이(周恩來) 이래 가장 걸출한 중국 외교관으로 꼽히는 첸치천(錢其琛·74·사진) 부총리도 이번에 물러났다. 고령이 이유였다.
첸 부총리는 1988부터 1998년까지 외교부장을 맡아 최장수 기록을 세웠고 부총리로 승진해서는 중국 외교의 ‘태상황’으로 군림해 왔다.
저우언라이가 문화대혁명과 중소분쟁이라는 내우외환 속에서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중국의 국제위상을 단번에 제고시켰다면 톈안먼(天安門) 사태와 동유럽권 몰락으로 고립지경에 빠진 중국을 건져낸 것은 첸 부총리의 공이다.
그는 1992년 한국과의 수교를 성사시킴으로써 톈안먼 사태 이후 국제무대로 복귀하려는 대만의 꿈을 무산시키기도 했다.
‘국제정세의 흐름을 잘 읽으며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평을 들어온 그였지만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의 대중 강경노선에 대해서는 호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미국이 대(對)대만 무기판매 방침을 밝히자 올 3월 미국을 방문해 “대만을 포격하겠다”며 ‘중국판 불바다론’으로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1955년 주소련 대사관 2등 비서로 외교관의 길을 걸은 첸 부총리는 일본통인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부장을 대신해 대미 외교를 전담해 왔다.
▼반골이라서…리루이환, 反장쩌민 ‘괘씸죄’▼
중국 인민이 이번 당 대회를 계기로 물러나는 지도자 중 가장 아쉬워하는 인물이 있다면 리루이환(李瑞環·68·사진)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일 것이다. 리 주석은 권위주의적인 중국 정계에서 보기 드문 진보주의자로 평가받아 왔다.
그는 정협을 구성하는 민주당파들이 공산당을 감시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등 정치개혁에 대한 소신을 피력하기도 했다.
70세 연령 상한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그가 물러난 것은 타고난 반골(反骨)기질로 인한 ‘괘씸죄’ 때문. 그는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3개 대표이론에 대해서도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이론이라며 직격탄을 퍼부었다. 또 올해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는 장 주석에게 “당의 발전을 위해 용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톈안먼(天安門) 사태 직후에는 ‘백성이 귀하고 군주는 가볍다(民貴君輕)’는 옛 문구를 인용해 보수파를 공격하기도 했다.
리 주석은 중국 인민들 사이에서는 ‘리무장(李木匠)’이란 애칭으로 불린다. 톈진(天津) 외곽의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17세 때 목수로 사회에 첫 발을 들여놓은 이래 31세가 되던 해까지 목공구를 손에서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있으면서도 부모가 고향의 방 두칸짜리 토담집에서 생활할 정도로 청렴했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