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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피해/강원]태풍에 바뀐 강릉지형-민심 헬기르포

입력 | 2002-09-08 18:04:00

강원 강릉시 강동면 한 농촌 마을의 계단식 논이 산에서 밀려 온 흙과 모래더미로 온통 뒤덥여 있다. - 강릉=신원건기자


수해로 8일째 고립된 강원 강릉시 구정면 어단리 단경계곡 마을로 경기도 소방본부 헬기가 쌀 김치 라면 생수 등 구호품을 싣고 7일 오후 2시경 강릉시청에서 출발했다.

헬기가 이륙하자 폭우 때문에 터진 장현저수지 둑과 수마가 휩쓸고 간 신석동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옹기종기 모여 있던 집들은 사라지고 검붉은 토사와 자갈이 집터를 뒤덮고 있었다.

‘S자형’이었던 물줄기는 ‘I자형’으로 바뀌었고 주민들이 물길로 변한 경작지를 허탈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고도가 높아지자 장현저수지와 함께 터진 어단리 동막저수지 둑의 동쪽 금광천 일대 농경지도 보였다. 신석동 마을처럼 없던 물줄기가 논 위에 새로 생기고 피땀 흘려 가꾼 텃밭에는 바위와 돌멩이가 굴러 파헤쳐지는 등 대형 수재가 남긴 상흔은 깊었다.

헬기가 단경골 진입로 중간쯤의 한 마을 옆 자갈밭에 착륙하자 주민 6명이 달려왔다.

평평한 땅이 없어 돌 틈에 헬기 바퀴를 고정하는 사이에 한 주민의 귀에 대고 며칠 만에 외부 사람이 왔느냐고 묻자 손가락 여덟 개를 펼쳐 보였다.

구호품을 전달하고 헬기가 이륙하자 주민들은 두 손을 크게 흔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단경골 진입로에서 기수를 동쪽으로 돌려 강동면 정동진역 부근 산성우리 마을 위를 날았다. 침수됐던 집들의 물은 빠졌지만 진입로가 막혀 피난간 주민들은 보이지 않았고 군인들이 급류에 휩쓸려 내려와 빈 집 방안에서 발견된 돼지 5마리를 꺼내고 있었다.

안인역 앞 염전도 침수돼 금광천에서 불어난 계곡 물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북쪽으로 조금 올라오니 강릉비행장 진입로 역할을 하다가 이번 홍수로 끊어진 남항진 다리가 보였다. 다리 난간에 설치됐던 상수도관도 동강났고, 고립된 주민들은 작은 고무보트로 물을 건넜다.

시내 노암동 침수지역 앞 남대천 제방에는 강동면 쓰레기매립지 진입로가 끊어지는 바람에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가 방치돼 악취를 풍겼다.

헬기에서 내려 강릉시 성남동 음식점 골목으로 들어가자 태풍으로 가족과 집을 잃고 복구 작업마저 포기한 채 대낮부터 소주를 마시며 아픔을 달래는 이재민들이 보였다. 강릉의 술집들은 이런 이재민들로 붐비고 있다고 한 술집 주인이 전했다.

전문가들은 대형 재난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계속되면 이재민들이 점차 공격적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외상성 후유증’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릉 시내 신경정신과 이모 원장은 “지금은 이재민들이 수해로 인한 충격으로 불면증이나 울화병 등을 호소하는 수준이지만 얼마 후 ‘갈 데까지 가보자’며 공격적인 감정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강릉〓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