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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24시/흔들리는 과장님⑦]“후배씨, 내 PC가 속 썩이는데…”

입력 | 2002-01-24 18:22:00


홍보실에서만 9년째 근무중인 기아자동차 이화원 과장(41). 사람을 만나고 보도자료를 내고 기아차의 브랜드를 높이는 일에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러나 요즘 그는 ‘어쩔 수 없는 부족함’을 느끼곤 한다.

보도자료를 e메일로 보내기 위해 사진을 스캔받을 일이 많아졌지만 그때마다 후배사원인 강형근씨(27)를 찾는다. 이 과장에게 ‘너무도 엄청난 일’인 파워포인트로 문서를 작성하는 일도 후배들은 뚝딱뚝딱 잘 해낸다.

“한 번은 일요일이라 집에서 쉬고있는데 자료를 찾아달라는 요청이 왔어요. 집에서 컴퓨터로 하면 될 일이지만 도저히 안되더라구요. 회사까지 나와서 서류파일 뒤져서 전화로 알려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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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그의 ‘디지털 마인드’가 비슷한 세대에서 뒤떨어진 편은 아니다. 새해를 맞아 친구들에게 일일이 전화걸기 힘들어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S그룹 계열사에 과장으로 있는 한 친구는 전화를 걸어와 “어떻게 이런 것도 하느냐”며 부러워했다.

이 과장은 자신이 사원이었을 때 ‘과장님’을 생각해보면 일방적인 지식의 전수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요즘에는 과장이란 자리가 후배에게 배우면서, 일은 가르쳐야 하는 묘한 위치인 것 같다. 후배를 야단치려다가도 ‘좀 있다가 부탁할 일이 있는데…’하는 생각이 들면 ‘핏대’가 오르던 마음이 가라앉기도 한다.

김성숙 대한투자신탁증권 경영지원실 과장(37)은 한때 회사 안에서 ‘컴퓨터를 좀 아는 사람’으로 통했다. 그러나 요즘 후배들을 보면 자신이 ‘워드 세대’라면 후배들은 ‘인터넷 세대’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우리는 책을 보고 기술을 배우지만 후배들은 학생시절부터 컴퓨터와 놀며 공부했던 세대라 모든 것이 체화(體化)돼 있더라구요.”

인터넷 검색만 해도 김 과장은 회사안에서 연수과정을 통해 배웠다. 한 때는 제한된 시간안에 가장 빨리 정보를 찾는 인터넷 경시대회도 있었다. 거기서 상을 타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것도 우스운 이야기다.

김 과장은 동기들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다가 가끔 결의를 다져보기도 한다. ‘우리도 컴퓨터로 게임하고 인터넷 검색하는 모임이라도 한 번 만들어보자’고. 그러나 결의는 결의로 끝나고 쏟아지는 업무를 소화하느라 오늘도 종종 걸음만 칠 뿐이다.

하임숙기자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