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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美LPGA 첫 승-SBS 최강전 우승 박희정

입력 | 2001-10-15 18:37:00

박희정


피말리는 승부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자신감’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지난달 미국LPGA투어 윌리엄스챔피언십 우승은 ‘코알라’ 박희정(21·채널V코리아)에게 단순한 1승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나도 할수 있다’는 것을 자신에게 증명했던 것이다. 더욱이 세계 최강이라는 아니카 소렌스탐(23위)과 캐리 웹(30위)도 출전한 대회가 아니었던가. 14일 벌어진 SBS 프로골프 최강전 여자부 결승(매치플레이) 연장 첫 홀에서 선배 정일미(29)를 꺾을수 있었던 힘도 바로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었다. 특히 지난해 10월 SK엔크린대회 연장전에서 정일미에게 패한 것을 멋지게 설욕한 것이다.

사실 미국LPGA투어에서 50개 대회 출전만에 첫 우승을 차지한지 불과 한달만에 출전한 ‘고국대회’였기에 무척 부담이 됐다. ‘뭔가 보여줘야 겠다’는 욕심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것들을 극복할수 있을 정도록 박희정은 훌쩍 성장한 것이다.

“98년 스포츠서울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이후 국내 팬에게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어요. 제가 우승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이번에 보여드리게 너무 기뻐요”.

그런데 그토록 소중한 자신감을 얻기까지 지난 2년간의 미국투어생활은 골프채를 놓고 싶을 정도로 고통의 세월이었다.

“연속해서 예선탈락한 지난해 시즌 초반에는 먹성좋은 제가 음식을 먹기만 하면 스트레스 때문에 바로 토해버렸어요. 두 달 사이에 몸무게가 12kg이나 빠졌지요. 하는수 없이 칼로리를 보충하기 위해 사탕을 계속 먹으면서 시합을 치러야 했습니다”.

호주 주니어와 아마추어무대를 평정한 뒤 미국LPGA 퀄리파잉스쿨을 단번에 통과하며 탄탄대로를 걸어온 그로서는 감내하기 힘들었다.

특히 스폰서도 없던 처지라 얼마안되는 하위권 상금으로는 출전경비를 충당하는데도 턱없이 부족했다. 조바심 때문에 게임을 망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럴수록 더욱 헤어나올수 없는 슬럼프에 빠져들었다.

“98년 호주와 한국에서 연속해서 프로자격증을 따냈을때만 해도 곧바로 스폰서가 나타나는 줄만 알았어요. 하지만 아무도 손을 잡아주지 않더군요.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어요. IMF 때문에 기업들이 어려워 그렇다고만은 생각할수 없었어요. 객관적인 조건에서 결코 제가 뒤지지 않는데 다른 선수들은 척척 수억원대 스폰서계약이 이뤄졌거든요”.

박희정은 중3때 호주로 ‘골프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아버지가 이민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출발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나중에 얼마간 되찾은 재산은 대부분 그의 골프유학비용으로 써버린 상황이었다. 고교졸업당시 미국의 페퍼 다인대학(캘리포니아)에서 전학년 장학금의 좋은 조건으로 입학제의가 왔지만 대학생활의 낭만은 사치에 불과했다. 그래서 바로 프로무대에 뛰어들었다.

한시즌 투어경비가 아무리 절약해서 써도 15만달러 이상 들어가는 미국진출에 스폰서는 반드시 필요했건만 끝내 스폰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결과 미국진출 첫 해는 완전실패. 상금랭킹 134위로 풀시드도 잃어버리며 컨디셔널시드(조건부 출전권)로 추락한 상태에서 올시즌을 맞았다.

다행히 올해 초 스폰서(채널V코리아)를 잡으면서 투어경비 걱정을 덜게된 박희정은 안정을 되찾았고 성적도 향상됐다.

또 이안 트릭스 코치(호주)를 만나면서 샷도 안정됐다. 그러더니 미국진출 2년만에 50번째 대회인 윌리엄스챔피언십에서 꿈에 그린던 우승의 기쁨을 맛봤고 ‘금의환향’한후 고국대회에서도 멋진 모습으로 우승했다.

그러나 내년 시즌을 준비하는 박희정의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현 스폰서와의 계약이 올해로 종료돼 ‘혹시 내년시즌도 스폰서없이 뛰게 되는 것은 아니냐’는 불안감 때문.

“지난해 마음고생은 심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제는 제가 어지간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을수 있는 ‘약’이 된 것 같아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요. 아픔만큼 성숙해 진다고 도 하잖아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방금전까지만 해도 밝게 웃으며 얘기하던 박희정은 표정은 굳어있었다.

박희정은 ‘유학파’이지만 반드시 해외골프유학이 필요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특수한 경우겠지만 세리 언니를 보면 유학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골프는 시작이 중요하고 특히 스윙은 첫 단추를 잘 꿰야 합니다. 한국보다는 호주나 미국이 그런면에서는 조건이 좋은 것만은 사실이예요”.

그가 골프유학을 떠나려는 주니어골퍼와 부모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은 무엇일까. 부모의 ‘헌신’이었다.

“주니어시절은 자신을 통제시켜줄수 있는 부모님이 필요합니다. 골프선수는 그 특성상 자동차를 몰고 다니고 친구도 쉽게 사귀기 마련입니다. 그런것에 빠져들면 골프는 실패하기 마련이죠. 제 주위에서 그런 경우를 많이 봤어요.혼자서 골프유학을 떠나서는 결코 성공할수 없어요”.

박희정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한다.

윌리엄스챔피언십 우승으로 3년간 풀시드가 보장됐지만 그것은 단지 기회만 제공됐을 뿐이라는 것. 어떤 ‘열매’를 딸지는 지금까지 보다 몇배의 노력과 인내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박희정 프로필

△생년월일:1980년 2월27일

△가족관계:박승철(47), 유혜숙(43)씨의 외동딸

△체격:1m64, 63kg

△골프입문:1993년

△골프유학:1994년(중3때 호주)

△취미:음악감상,비디오게임

△프로데뷔:1998년(호주·한국LPGA) 1999년(미국LPGA)

△우승:호주주니어챔피언십 3연패(1996∼98년) 등 아마추어 40승, 제1회 스포츠서울 여자오픈(1998) 인도네시아여자오픈(1999) 미국LPGA 윌리엄스챔피언십, SBS프로골프 최강전(이상 2001)

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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