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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연구 외길 서울대 민병수교수 정년퇴임후 훈장님으로

입력 | 2001-08-13 18:27:00


“한문학 연구에 일생을 바쳤지만 여전히 회한이 남습니다. 비록 강단은 떠나더라도 못다한 꿈을 서당에서 이뤄보려고 해요.”

9월 1일자로 30여년간 몸 담아온 강단을 정년퇴임으로 떠나는 서울대 국문학과 민병수(閔丙秀·65) 교수가 자비를 털어 무료서당을 개설, ‘훈장선생님’으로 나섰다.

민교수는 올 초 서울 관악구 남현동에 자신의 호를 딴 청파(淸坡)서실을 개원해 3월 첫 학기 수업을 시작했다. 가르치는 일을 돈벌이로 삼을 수 없다는 생각에 수강료는 무료.

서실운영비로 들어가는 100만원 가까운 월세가 부담스럽지만 당분간 계속 무료강의를 할 작정이다.

“읽을수록 새로운 맛이 우러나오는 한시(漢詩)에는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삶의 지혜가 담겨있다”는 민교수는 “한시가 갖고 있는 언외지미(言外之味)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민교수의 서당 개원 소식을 듣고 몰려든 130여명의 제자들도 노교수의 열의를 북돋아준다. 70세 노인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유생’들은 모두 132명으로 이들은 대학생반 1개반, 성인반 4개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민교수는 “30명만 들어가도 꽉 들어차는 비좁은 20평 공간이지만 한시를 배우고 싶어 몰려든 제자들을 생각하면 강의 준비를 감히 소홀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 한문학 1세대의 대표주자인 민교수는 한시 연구 외길을 걸어온 인물. 그는 70년대말부터 한시강독회, 한시학회 등을 창설해 한시 연구의 기반을 다졌다.

96년에는 ‘한창 연구할 나이에 벌써부터 원로대접을 받기 싫다’며 학계 관행인 회갑 논문 봉정을 고사하고 ‘한국한시사’ 등 4권의 연구서적과 한시를 영어로 옮긴 번역서를 잇따라 출간하기도 했다.

민교수는 “옛 선인의 지혜와 여유가 가득 담긴 한시가 현대인들에게 푸대접받고 있는 세태가 안타깝다”면서 “이제는 강의실 밖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문학 연구와 후학양성 등 한문학의 대중화에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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