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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허승호/印尼사태와 IMF역할

입력 | 1998-05-22 19:25:00


‘자바왕국 제왕.’ 32년만에 국민에게 백기항복한 수하르토의 퇴장은 언뜻 보면 영락 없는 독재자 타도 드라마요,‘피플 파워’의 승리다.

그러나 그렇게만 보면 될까.

수하르토가 사임을 발표하기 이틀 전인 19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미국내 공금리를 인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금리를 올리면 세계의 돈이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그러면 인도네시아 때문에 가뜩이나 불안한 아시아경제가 다시 한번 치명타를 입게 된다는 것을 고려한 조치였다. 세계는 이렇게 촘촘히 얽혀 있다.

20일 제네바에서 끝난 세계무역기구(WTO)회의에서는 개도국들이 “도대체 시장개방의 이익이 뭐냐”고 강한 불만을 토해냈다. 그 바닥에는 “수하르토정권은 장기독재도 문제였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이 집도한 ‘개방’수술을 받다 사망한 것”이라고 보는 개도국의 불만이 깔려 있었다.

인도네시아 시위와 폭동에서 ‘수하르토 퇴진’구호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수하르토가 IMF의 강권에 따라 정부보조금을 폐지, 유가를 70% 올리고 전기료를 대폭 인상한다고 발표한 4일부터였다.

경제불만이 정치소요를 낳고 이내 정권퇴진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사실상의 첫 도화선은 IMF처방이었다는 풀이도 있다.

시장의 힘이 개발독재를 무너뜨린 것이지만 ‘아시아식 경제체제’에 대한 ‘세계화 처방’이 정권을 뒤집은 첫 임상사례라고도 할 수 있다.

수하르토의 사임에 대해 말레이시아 등 개도국과 주변국이 말을 삼가는 것은 이같은 속끓음 때문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사태의 ‘정치 민주화’ 측면만 보지 않고 세계화 시대 개도국의 주권 문제,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국제경제 현실 등을 읽어낸다면 그래도 큰 소득일지 모른다.

허승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