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적인 큰 애가 중학교 생활에 잘 적응을 하는지. 작은 애 학교에선 학급문고로 쓸 책이 필요하다던데.’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4학년 남매를 둔 주부 김모씨(39·서울 서초구)는 며칠째 고민중. 애들 담임교사를 한번 따로 찾아가야 할텐데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다.
“지난달 학부모 총회에서 교장선생님이 ‘선생님 자존심 깎는 일 하지 말라’고 당부를 하시더라고요. 지난해까지는 학년초마다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상담하고 상품권이나 선물을 드렸는데 올해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촌지. 많은 학부모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고민하는 대목이다. 대부분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안 했다가 아이가 차별대우라도 당할까봐’라는 생각이 깔려있는 게 사실. ‘촌지에 대한 부담없이 당당하게 찾아와 아이들 문제를 상의하라’는 교사들의 말은 흘려듣기 일쑤다.
아이에 대해 수시로 의견을 나누고 도움을 주고 받아야 할 교사와의 관계가 촌지 때문에 껄끄러워지지 않으려면?
▼자연스럽게 만나라〓따로 시간을 내는 것보다는 여러 학부모들과 함께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다. 학부모 총회나 청소 급식같은 봉사활동이 좋은 기회. 학부모 심혜경씨(36·서울 방화동)는 “한 달에 서너번 급식당번을 했더니 선생님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져 아이에 관해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고 조언.
▼뒷거래할 생각 말라〓대부분의 촌지에는 순수한 감사의 마음보다는 ‘내 아이만 잘 봐달라’는 청탁이 결부돼 있다. 서울난곡초등학교 오창환교사는 “언제까지 아이를 두고 뒷거래를 하며 불신을 쌓아야겠느냐”며 “설령 촌지를 갖다 주지 않아 아이가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생길지라도 옳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교사의 인격을 존중하라〓촌지는 몇 만원으로 교사의 인격을 ‘사는’ 격. 그대로 받아들이는 교사도 있는 반면 자괴감과 모멸감을 느낀다고 털어놓는 교사도 있다.
▼마음의 선물을 하라〓아이와 함께 접은 종이접기 작품, 직접 손으로 뜬 스웨터, 집에서 재배한 상추같은 ‘정성이 담긴’ 선물이 훨씬 기억에 남는다는 것이 교사들의 말. 학년초보다는 학년말에 주고 받아야 서로의 마음이 가뿐하다.
◇ 이렇게 상담하세요
‘오후 3∼4시에 학교를 방문하시면 성의껏 모시겠습니다. 항상 따뜻한 차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서울 동작구 본동 영본초등학교 5학년7반 학부모들이 지난달 받은 설문지의 한 대목. 담임 황재기교사는 아이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 학부모들이 편안하게 찾아와 상담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다음은 황교사가 학부모에게 조언하는 상담요령 몇 가지.
▼미리 약속〓수업 중에 불쑥 찾아 오거나 아이에게 물건을 전해주러 왔다가 쉬는 시간에 잠깐 들러 상담을 하면 바른 정보를 기대하기 어렵다. 아이에 관해 알리고 싶거나 알고 싶은 내용을 적어 아이 편에 미리 보내면 교사가 자료를 준비할 수 있어 상담효과도 높이고 신뢰감도 쌓인다.
▼이야깃거리 준비〓아이의 건강과 생활습관을 비롯, 성격 친구관계 학습의욕 재능 관심분야 집안분위기 등을 미리 정리해 두었다가 차근차근 설명. 담임교사가 알아두어야 할 특별한 문제상황도 숨기지 말고 이야기한다. 자리 짝 숙제 청소 등에 관한 아이의 불만을 털어 놓으며 ‘이렇게 바꿔달라’는 식의 청탁에만 급급하면 교사와의 신뢰를 쌓기 어렵다.
▼편지쓰기〓꼭 교사를 직접 찾아 상담할 필요는 없다. 교사와의 만남이 부담스럽거나 학교에 찾아갈 시간이 없는 맞벌이 학부모라면 편지를 쓰거나 아이의 알림장에 하고 싶은 얘기를 짤막하게 써보내면 된다.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전화받기 힘들기 때문에 전화보다는 편지가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