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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강황석/가파른 「고실업 고갯길」

입력 | 1998-03-30 19:58:00


노동계 움직임이 미묘하다. 한국노총이 민주노총에 노동계 통합을 제의하고 민주노총이 이에 원칙적 찬성론으로 화답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시대, 급격한 고용기반 붕괴로 갈수록 약해지는 노동계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다. 그동안 복수노조를 지향해온 민주노총이 비록 ‘개혁적인 방향으로의 통합’을 전제로 내걸기는 했지만 기업별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2002년 이전의 통합과 6월 지자체 선거에서의 협력제의에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주목되는 것은 기존 노조와 실업자들의 연대 움직임이다.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련은 20일 국내 최초로 실업자를 흡수한 가칭 전국건설노동실업자동맹을 결성했다. 실직자들의 조직화 움직임과 기존 노조의 강화전략이 맞물리면서 노동계가 새로운 형태로 전열을 재정비하는 모습이다. 그 힘고르기가 끝나면 어렵게 구축한 노사정(勞使政)협력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 어렵다.

전국 실업자수는 이미 1백50만명을 넘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루 1만명꼴로 실직자가 늘고 실업률이 가파른 곡선을 그으며 치솟고 있다. 앞으로 기업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본격화할 경우 그 정점이 어디에 이를지 분석기관마다 가늠도 다르다. 어떤 기관은 1백60만명을 점치고 일부 외국기관은 2백만명이 넘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이들 분석기관들은 공통적으로 실업률 상승곡선이 꺾이기 시작한다 해도 1백만명 이상의 고실업이 적어도 3∼4년간 지속된다고 보고 있다. 그것도 구조조정이 순탄하게 이루어져 경제회생에 성공할 경우이고 실패한다면 2000년까지 모두 2백60만명에 가까운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마저 제시되고 있다.

마라톤 경기에서 후미그룹과 선두의 격차는 기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몇년에 걸쳐 계속되는 ‘IMF마라톤’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취업자의 10%에 이르는 2백만명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고 적어도 3∼4년간 1백만명이 실업자로 남는다면 그로 인해 깊어질 사회의 불평등구조가 IMF 탈출속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근본적 실업대책은 두말할 나위 없이 고용의 회복이다. 그 밖의 대책은 한계가 있다.고용보험에서 지급하는 실업급여는 액수도 액수지만 혜택기간이 길어야 아홉달이다.

한달 50만원씩 지급하기로 한 공공근로사업도 8개월 한정조건이다. 실업급여 혜택을 5인이하 사업장과 일용 임시직에까지 확대할 계획이지만 기금이 바닥나는 경우도 상정해야 한다. 우선 올해만은 어렵게 재원을 마련했지만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구조조정과 함께 3∼4년간 계속될 고실업시대에 그나마의 대책수준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급속하게 확대되는 기업도산과 대형실업으로 이미 가정이 흔들리고 개인이 파멸하고 있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계층의 양극화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자살로 나타나는 도피심리와 파괴충동이 노동계의 재편과 어울려 사회분열과 계층간 갈등을 촉발한다면 IMF 극복은커녕 끝장을 피할 수 없다. 대기업의 공채포기로 16만명의 젊은이들이 실업자군에 합류하는 절박한 마당이다.

IMF마라톤은 지금 막 시작단계다. 잘나가는 선두그룹과 후미그룹의 거리는 시간이 갈수록 더 크게 벌어질 것이다. 진정한 고통분담으로 사회적 갈등의 확산위험을 막는 제도에 마음을 써야 한다.

강황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