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北風)’이 국민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연일 쏟아지고 있는 여야의 북풍관련 발언과 각종 설(說) 등의 난무로 그러잖아도 경제난국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의 머리는 극도의 혼돈속으로 빠져들었다.
20여일 전부터 시작된 북풍공작수사는 그 본질이 왜곡돼 원래 목적과 의도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지게 하고 있다.
북풍은 구여권과 신여권 모두에 관련된 문제다. 구여권은 집권연장을 위해 북풍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일부는 사실로 드러났다.
신여권도 선거과정에서 북풍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기는 하지만 공작에 연루됐다. 동기와 배경이 다르기는 하나 정치권 모두 북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북풍공작에 대한 수사는 내부적인 진척에도 불구하고 중구난방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고 정치권은 진상규명과는 거리가 먼 시끄러운 정쟁과 책임공방만 일삼고 있다.
이같은 현실의 1차적인 책임은 여권에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신정부가 출범 직후 개혁과 구시대의 적폐(積弊)청산작업의 일환으로 메스를 들이댄 북풍공작수사는 몇건의 실책과 외부요인이 겹치면서 일파만파로 파장이 확대됐다. 이른바 북풍문건에 대한 정확한 사실규명도 하기 전에 여권내 고위인사가 문건내용을 공개하는가 하면 안기부 등 사정당국의 핵심관계자들은 문건을 입수하고도 적절한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태확산에 일조했다.
이 때문에 조용하고도 신속하게 처리했어야 할 수사는 온동네가 굿판 벌이듯 떠들썩하게 진행됐고 이런 난장판은 정치권에 대한 수사확대 여부를 둘러싸고 절정에 달했다.
최근에 이어진 여권 핵심인사들의 북풍수사 관련발언을 살펴보면 여권내의 난조(亂調)가 여실히 드러난다.
북풍수사에 관한 최종결정권을 쥐고 있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진상규명은 철저히, 사법처리는 신중히’라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대통령도 아직 명확한 태도를 정하지 못한 것 같다. 그는 24일 취임한달 기자간담회에서 정치인사법처리 여부에 대해 “죄질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말해 사법처리 방침을 시사했다.
그가 “조사가 끝나면 ‘여론’을 참작해 결론을 내리겠다”고 말한 대목도 ‘사법처리 불가피’라는 관측이 가능하다.
북풍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이종찬 안기부장은 25일 “사법처리대상 정치인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정치인 수사에 대해서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김태정(金泰政)검찰총장과 검찰 관계자들은 “사건을 철저히 파헤쳐 정치인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실정법위반여부를 가리겠다. 정권을 잡으려고 적과 동침했다면 여야를 불문하고 용서할 수 없다”며 연일 사법처리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박상천(朴相千)법무부장관도 25일 국회본회의 답변에서 “정치권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북한과 연계한 혐의가 드러나면 처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당국의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다른 고위관계자들의 얘기도 저마다 제각각이다.
사태가 여기까지 온데에는 한나라당의 책임이 적지 않다. 한나라당은 북풍공작 연루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초점을 흐리는 본말전도(本末顚倒)의 정치공세에 치중했다. 심지어 과거 여권이 용공음해와 공작정치를 위해 휘둘렀던 ‘색깔론’을 현정권을 향해 다시 꺼내들기도 했다.
권영해(權寧海)전부장 등 구안기부세력들은 북풍공작을 ‘위국충정(爲國衷情)’이라는 어불성설의 명분으로 호도하며 자살기도 등 어처구니없는 행동으로 저항하고 있다.
이같은 이전투구 과정에서 국가최고정보기관인 안기부의 위상은 급추락, 국내외적으로 3급정보기관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내부기밀자료와 첩보활동상까지 적나라하게 공개됨으로써 국내외적으로 그동안 쌓아놓은 신뢰가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렸다. 전시에도 유지돼야 한다는 북한과의 접촉루트도 노출돼 이를 복원하는데 1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안기부의 위상추락은 경위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국익에 엄청난 손실을 입히게 될 것이다.
국민은 하루빨리 북풍공작의 진상이 가감없이 밝혀지고 재발방지와 후유증 치유를 위한 사후조치들이 취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최영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