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건설중인 경수로사업 비용분담을 거부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미행정부는 10월1일부터 시작되는 99회계연도 예산에 경수로건설 분담비를 전혀 계상하지 않았고 6일 끝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집행이사회에서도 ‘분담 불가’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미국의 이같은 거부로 혹시나 경수로건설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미국은 북한에 중유를 공급하고 있어 경수로건설에는 한푼도 낼 수 없다는 주장이지만 설득력이 없다. 한국은 대북(對北) 경수로건설에 ‘중심적’ 역할을 자임하며 총 공사비의 3분의 2 정도를 부담하겠다고 앞장서 밝혔다. 나머지 3분의 1은 어떤 형태로든 일본과 미국이 분담해야우방으로서의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 미국이나 일본은 북한의 핵 동결문제에한국과안보적 이해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일본에 대해서는 ‘의미있는’ 기여를, 미국에 대해서는 ‘상징적’ 기여를 촉구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따지고 보면 대북 경수로 공급을 주도한 측은 미국이다. 북한에 경수로 2기를 공급하기로 한 94년의 제네바합의는 20개월 가까운 미국과 북한간 협상에서 나온 결과다. 그 협상 과정에서 한국이 어떻게 소외됐는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당시 미국은 한반도의 안보유지뿐 아니라 세계적인 핵 억지정책의 일환으로 북한에 핵 동결 대신 경수로 2기 공급을 약속했다. 그같은 직접 합의 당사자인 미국이 막상 경수로 건설비문제가 나오자 고개를 돌린다면 떳떳하지 못하다. 더구나 처음 30억달러 정도로 예상했던 경수로총 공사비도51억달러로 늘어났다. 한국의부담도엄청나게 늘 수밖에 없다. 금융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에 들어가 있는 한국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다. 당장은 약속한 분담금조차 낼 수 없는 형편이다. 미국과 일본에 경수로비용 분담금을 우선 집행해 주도록 요청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사정을 미국은 감안해야 한다. 대북 경수로 건설사업은 남북경협의 핵심으로 사실상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계획대로 추진하지 않으면 당장 남북한 관계에 어떤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올 8월쯤 경수로 부지 정지공사가 끝나기 때문에 비용분담문제 해결은 급하다. 미국은 경수로 건설사업이 한반도의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스스로의 위상에 맞는 적절한 기여를 해야 한다. 경수로건설에 관한 한 미국은 1차적인 책임을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