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대 대통령선거의 후보 등록과 공식선거운동이 오늘부터 시작되고 투표일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왔으나 상당수의 국민은 누구를 대통령으로 선출할 것인가에 대해 혼란에 빠져 있다. 최근의 대선 여론조사에 나타난 각 후보에 대한 지지율의 현격한 변화는 이와 같은 혼란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국민이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혼란을 느끼는 것은 나라를 이끌어가겠다는 정치인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 세 후보 「장미빛 정책」 일색 ▼ 첫째로 각 후보진영은 국민에게 서로간 차별성이 있는 정책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선진제국에서는 경쟁후보들이 서로 뚜렷이 다른 정책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국민은 이 정책을 판단하여 투표한다. 현재 한국의 대통령후보들은 국민 각계 각층의 요구에 모두 부응하는 대체로 비슷한 정책을 제시하고 공약 남발의 경쟁을 하고 있다. 다음 대통령은 앞으로 1년 동안은 김영삼정권이 짜놓은 예산안의 범위 내에서 정책을 집행해야 하며 외환위기로 재정운영도 초긴축정책을 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의 공약 실천은 사실은 불가능하다. 다음 대통령은 국민에게 「쓰디 쓴」 정책을 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후보들은 「단 맛이 나는」 정책만 제시하고 있다. 대통령선거는 국민이 집권당의 지난 5년간 업적을 평가하고 이제 도전하는 야당의 능력을 판단하는 기회다. 선진외국의 선거는 집권당이 훌륭한 업적을 가지고 있으면 국민이 재집권의 기회를 주고 그렇지 못하면 재집권의 기회를 빼앗는 기능을 한다. 선진외국이 오랜 기간에 걸쳐 건전한 경제를 유지하고 권력자들이 부정부패에 빠지지 않는 것은 선거의 이와 같은 기능 때문이다. 이번 우리 대통령선거는 이와 같은 기능마저 잃고 있다. 지난 5년간의 실정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국민은 방황하고 있다. 둘째로 세 후보 진영의 정체성이 정치세력들의 이합집산으로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 한국의 정당들은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이나 영국의 노동당과 보수당 같은 오래된 정체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한나라당, 새정치국민회의, 국민신당은 모두 그 역사가 일천하다. 아직은 많은 정치인들이 이합집산의정치를하고있고 이에 따라 각당의 정체성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정책적 노선에 따른 이합집산이 아니라 당선가능성의 계산에 따른 이합집산이 계속되고 있다. 국민은 이번 대통령선거가 막판까지 3자 대결로 갈지, 세 후보중 두 후보의 연대가 일어날지 확실히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지지후보를 아직까지도 결정할 수 없는 혼란에 빠져 있는 것이다. ▼ 난국 극복 지혜 경쟁을 ▼ 셋째로 세 후보 진영은 단순하고 투명한 정치가 아니라 복선이 깔린 불투명한 정치를 하고 있다. 현재 김영삼정권에 대한 비판은 전통적으로 야성(野性)이 뚜렷한 후보 진영에서보다는 여성(與性)에 강한 후보 진영에서 더 나오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각 후보 진영의 이같은 자세의 밑바닥에는 깔린 목표가 있는데 이 목표를 국민이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각 후보 진영의 정치적 주장은 국민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복잡성을 가지고 있다. 세 후보들은 이제부터라도 정책적 노선의 차이와 그가 이끄는 정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정치적으로 투명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앞으로 있을 세 후보간의 TV토론은 나라가 이 꼴로 망가진 원인을 진단하고 이에는 어떠한 치료책이 있는가를 모색하는 기회가 돼야 할 것이다. 세 후보간에 김영삼정권의 실정을 질타하는 경쟁이 일어나고 이를 치료하기 위한 「쓰디쓴」 정책의 경쟁이 일어나기를 촉구한다. 이정복(서울대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