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엽(고려대4년·22)은 요즘 자신의 「불운」을 곱씹는다. 예년 같으면 졸업을 앞둔 지금쯤 각팀의 「모셔가기 경쟁」에 함박웃음을 터뜨릴 때. 그러나 아직 단 한통의 전화도 받은 적이 없다. 전국이 지난 8일 개막한 프로농구의 열기로 들떠있지만 그에게 눈길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다음달 초 대학농구연맹전이 시작되고 하순에는 농구대잔치의 막이 오른다. 그런데도 현주엽은 시들하다. 대학팀끼리 경기해봐야 관중도 별로 없고 신도 안난다. 그는 프로농구의 「희생양」. 1년위 선배들은 프로팀으로 가면서 짭짤하게 계약금을 챙겼다. 그러나 현주엽에겐 연봉외엔 없다. 현주엽과 서장훈(연세대4년)은 한국남자농구의 양 기둥. 휘문고 한해 선배인 서장훈은 미국 농구유학, 법정공방 등을 거치긴 했지만 SK나이츠로부터 15억원을 약속받았다. 현주엽의 값어치도 결코 서장훈에 뒤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내년 드래프트뿐. 마음에 드는 팀을 고를 수도, 기량에 걸맞은 계약금을 요구할 수도 없다. 드래프트제도 첫 실시의 가장 큰 피해자가 바로 현주엽. 『1년만 먼저 태어났더라면…』 그가 입버릇처럼 되뇌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지난 9월 현주엽은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의 일원이었던 그는 출국전날 연습도중 상대선수의 팔꿈치에 맞아 코뼈가 내려앉는 바람에 병원으로 실려가야 했다.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그는 『차라리 농구를 그만둬야겠다』고까지 생각했다. 자신에게만 불운이 끊이지 않는 것같았기 때문. 현주엽은 어머니의 설득에 마음을 고쳐 먹었다. 농구가 있기에 현주엽도 있다는 생각이 그에게 다시 볼을 잡게 했다. 끝까지 부딪치다 보면 불운이 자신을 떠나리라는 오기도 솟았다. 현주엽은 최근 호주의 프로팀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조건도 썩 내키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한국의 팬을 떠날수 없어 거절했다. 『열심히 하다 보면 나에게도 행운이 찾아오겠지요. 내년 프로무대에서 꼭 내 가치를 입증해 보이겠습니다』 한국판 찰스 바클리. 그는 자신의 마지막 아마무대인 올 겨울 코트를 기다리고 있다. 〈최화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