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거래 실명제(實名制)가 대선 정국의 도마에 올랐다. 신한국당은 실명제를 폐지하는 쪽으로 당내 의견을 모아 공약으로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보완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신한국당이 일부 기득권 계층에 영합하는 득표전략으로 실명제를 폐지하려 한다면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시행과정에서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부분적인 보완은 불가피할지 모르나 실명제 자체를 폐지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부는 대통령긴급명령으로 되어 있는 실명제의 대체입법과 보완방안을 이미 국회에 제출해 놓았다. 비(非)실명자금을 소정의 도강세(渡江稅)만 물리며 양성화하고 차명예금을 허용한다는 보완방안은 실명제 취지를 훼손하는 내용임에도 국민이 경제활성화를 위해 마지못해 양해한 상태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실명제를 아예 폐지한다면 모처럼의 개혁이 원점으로 돌아간다. 지하경제를 없애고 경제정의를 실현하자는 목적에서 시행된 실명제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신한국당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한때 김종필(金鍾泌)자민련총재도 실명제 폐지를 주장했으나 국민회의와의 연대 이후 양당이 부분 보완으로 방향을 잡은 건 다행이다. 신한국당이 실명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워 대선에서 표를 얻으려는 전략이라면 잘못된 판단이다. 김영삼(金泳三)정부의 최대 개혁치적으로 꼽히는 실명제를 폐지함으로써 김대통령을 깎아내리고 차별화를 기하려는 의도라면 더욱 문제다. 옳은 방향의 개혁정책을 정쟁(政爭)의 희생물로 삼지 말기 바란다. 실명제는 지난 4년여 동안 국민의 불편과 경제적인 부작용이 없지 않았지만 이제 정착단계에 접어들었다. 정치권은 폐지를 거론하기보다 국민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사항은 없는지, 어떻게 하면 기본 취지에 맞게 실명제를 발전시킬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검은 돈 거래의 뿌리를 뽑자는 목적의 실명제를 폐지해 표를 얻으려 한다면 어리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