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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윤종구/『아빠! 혼수가 뭐길래…돈이 뭐길래』

입력 | 1997-10-17 20:11:00


결혼식이 예정된 18일을 하루 앞둔 예비신부 임모씨(24)의 얼굴은 눈물투성이였다. 신혼의 단꿈에 대한 설렘 대신 가슴은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으로 미어졌다. 『아빠. 혼수가 뭐길래, 돈이 뭐길래…』 17일 오후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영안실에 마련된 임씨 아버지의 빈소. 아침부터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그는 미동도 않은채 어깨만 들먹거렸다. 아버지는 전날 둘째딸 임씨의 혼수품 마련을 걱정하다 끝내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아버지는 그날도 생활고와 혼수 부담으로 무거워진 마음을 잠시라도 잊어 보려고 가볍게 술 한잔을 했다. 집에 온 뒤에도 안방에서 조용히 자리를 한 채 자식에게 미안한 심정을 삭였다. 마루에서 결혼식 하객에게 대접할 음식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어머니를 보면서 아버지는 더욱 가슴이 답답했다. 『돈을 제대로 벌어 혼수품을 잘 챙겨줘야 하는건데…』 결혼식은 코앞에 닥쳐왔는데 부모로서 뭐하나 번듯하게 해줄 수 없는 현실이 임씨 아버지의 어깨를 한없이 짓눌렀다. 10년이 넘도록 영업용 택시를 몰았지만 개인택시를 받지 못해 고민하던 아버지, 딸들을 조금이라도 잘해주겠노라며 늘 새벽까지 운전대를 놓지 않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픔이 되어 임씨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아버지는 더이상 현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먼저 떠나갔다. 돈벌어 좀 더 넓은 집에서 살자던 아버지의 약속도, 딸만 보면 피로가 가신다며 얼굴을 펴던 아버지의 웃음소리도 영영 사라져 버렸다. 『14평 좁은 임대아파트에서 다섯 식구가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우리 세 자매에게 늘 미안해 하시더니…』 예비신부 임씨의 두 눈에는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윤종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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