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감사드립니다』 이효계(李孝桂)농림부장관이 올해 쌀농사가 대풍(大豊)을 이룰 것이라는 보고를 받은 뒤 밝힌 소감이다. 농사란 천(天)지(地)인(人)의 어울림속에서 결실을 맺는 일이라 장관이 다분히 주술적인 발언을 하더라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농림부가 8일 발표한 올해 쌀수확 예상량은 3천7백16만섬. 단군이래 최대풍작이라고 떠들썩하던 지난해 생산량보다 20만섬, 올해 목표생산량보다는 3백36만섬이나 많다. 잇따른 대기업의 부도,그에 따른 실업과 구직행렬, 추락하는 증시, 하루가 다르게 가벼워지는 장바구니…. 국민들을 고단하게 만드는 경제상황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잿빛 안개라면 이날의 「풍년예감」은 황금빛 낭보다. 더구나 한국경제의 선봉장 격인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의 첨단 제조업이 최근 구조조정기를 맞아 비틀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경쟁력이 없다」고 구박만 받던 농업에서 일궈낸 희소식이라 더 푸근하다. 올해 쌀 생산 예상량을 돈으로 환산하면 6조1천억원. 평년작일 경우 5조4천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7천억원 가까이 더 「수확」한 셈. 기아그룹이 채권단에 요구하는 긴급지원자금 1천8백억원을 세번쯤 주고도 남는다. 이번 풍작으로 경상수지 적자도 2천2백억원 정도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게 농림부의 분석이다. 그러나 어차피 한해 4모작이 가능한 베트남이나 비행기로 농사짓는 미국 호주 등과의 비교우위를 따지는 것이 경제적으로 큰 의미는 없다. 단보(3백평)당 쌀 생산량은 5백7㎏으로 이미 미국(4백94㎏) 일본(4백88㎏)보다 많아 효율적인 농지 이용면에서는 단연 세계 선두권이다. 농림부는 이날 쌀풍작으로 기대되는 효과중의 하나로 「민심안정」을 꼽았다.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들판을 보면서 느끼는 마음의 풍성함만으로 쌀농사는 경제적 수확 이상의 효과를 제공한다는 의미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벼멸구나 티나, 커크 등 태풍과 싸우면서 「일한 만큼 돌려준다」는 땅의 정직함을 새삼스레 일깨워 준 농민들의 땀방울이 돋보인다. 올해 증산된 물량으로 인해 농민들이 농사 잘 짓고도 가격폭락으로 손해를 보는 「풍년의 역설」이 발생하지 않도록 당국은 쌀 수급조절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용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