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작가 연출가 배우 시나리오작가 코미디작가 MC…. 장진(26)을 수식하는 말이다. 얼마전에는 공연기획사 CMI로부터 연극인 최초로 전속계약을 「당하기도」 했다. 겨울에는 영화감독으로 데뷔할 계획이다. 게다가 장진은 키도 큰 남자다. 희곡 하나로 기억되기도 힘든데 세상은 불공평하기도 하다. 그가 올봄에 직접 쓰고 연출, 전회매진을 기록했던 연극 「택시 드리벌」이 서울연극제 공식초청작으로 뽑혀 10일 서울 문예회관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95년 그의 희곡 「서툰 사람들」이 서울연극제에 초청돼 송채환에게 여자연기상을 안겨준 이래 두번째 진출. 총알이 가득 장전된 권총처럼, 장진의 어디에서 그렇게 재주가 솟아나는 것일까. 『여섯살 때 유서를 쓴 적이 있어요. 그게 내가 사람을 울린 최초의 글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타고난 멜로작가나 비극작가라는 농담을 듣긴 해요』 어려서는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 중학 3학년 때 성당 성극대회에서 성극을 쓰고 연출 해보니 너무 재미있었다고 한다. 고교때 연극반에서 살았고 서울예전 연극과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군대를 갔는데 최전방에 배치됐다. 『연극을 하고 싶어 미칠 것 같았어요. 밤에 보초를 설 때는 머리속에서 이야기를 짜고 낮에 시간이 날때는 희곡을 썼어요. 군에서 만들어낸 인물 장덕배 유달수는 지금도 내 작품의 고정출연자예요』 95년 신춘문예 희곡으로 당선돼 연극동네에 뛰어들었다. 그것도 폭발적 에너지의 연극인 이윤택, 연극판의 통큰 제작자 유인촌씨 등과 함께 「큰 물」에서만 놀아 짧은 시간에 부쩍 자랄 수 있었다. 『운이 좋아서』라고 그는 설명하지만 「싹수가 있어서」라는 게 연극판의 풀이다. 돈은 연극판 밖에서 번다. 연극으로는 절대로 돈을 벌 수 없음에도 그가 이 판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연극할 때 신나는 것에 비해 다른 분야는 「잽」도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다시 태어나도 연극을 하겠다는 식의 기성연극인들과는 딴판으로 『서른 넘으면 산에 들어가 벌목을 하겠다』고 했다. 쿵쿵 나무를 베고 있으면 지구를 내가 돌리는구나 싶어진다는 게 그 이유. 『「내가 뭘 해야 지구를 돌릴 수 있다」는 것이 내 신조이기 때문이죠』 그의 연극에 끈질기게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인물이다. 거칠고 혼돈스러운 세상이지만 허탕을 치더라도 끊임없이 시도하려 애쓰는 서툰 사람들. 그래서 연극계에서는 그를 『번득이는 재기와 함께 따스함과 뒷심을 갖춘 연극판 귀염둥이』라고 평하고 있다. 02―3444―0651 〈김순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