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미덕으로 칭송된다. 그러나 양심과 역사 앞에서는 침묵도 죄가 될 수 있다. 며칠 전 프랑스 가톨릭교회는 「침묵의 책임」을 고백하고 사죄했다. 『성직자들은 침묵으로 죽음의 톱니바퀴가 돌아가게 내버려뒀다』는 성명이 그것이다. 2차대전중 프랑스에서 7만6천명의 유태인이 아우슈비츠 등의 수용소로 이송됐는데도 이에 저항하지 못했던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독일점령하 비시정권에서 있었던 프랑스의 유태인박해에 대해서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 프랑스의 대세였다. 그러다 자크 시라크대통령이 95년 취임 직후 그 잘못과 국가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전임 프랑수아 미테랑대통령은 레지스탕스 투사였으나 비시정권 실력자와 연결됐다는 의혹을 받았고 과거를 들추는데 반대했다. 미테랑보다 16년 젊은 시라크(65)는 그런 과거로부터 자유로웠다. 프랑스판 「역사 바로세우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모리스 파퐁(87)이 8일 공판정에 서는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그는 어린이 2백여명을 포함한 1천6백명의 유태인 강제이송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2차대전 후 파퐁은 파리경시청총감 국회의원 예산장관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시효가 없는 「인도에 관한 죄」를 그는 피하지 못하고 있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최근 퇴임한 장관급 22명에게 훈장을 주었다. 그들 중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인사도 없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훈장남발이 지적돼온지 오래다. 84년에는 한 해 동안 4천35명(하루평균 11명)이 훈장을 받기도 했다. 79년 이후만도 국민 2백20명당 1명꼴로 훈장 또는 포장을 받았다는 통계가 있다. 한쪽에서는 반세기 전의 죄과를 심판하고 심지어 「침묵」을 사죄하는데 우리는 엊그제의 공치사에 맴돌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