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 와서 가장 놀란 사실은 화폐가치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형편없다는 점이었다. 이 나라는 「터키리라」라는 단일화폐를 사용하고 있는데 9월말현재 미화 1달러당 약 17만3천리라로 교환되고 있다. 그래서 웬만한 제품은 가격이 수백만리라에서 수억리라로 책정돼 있다. 택시 기본요금은 9만리라, 관광지 입장료는 50만리라이고 한국식당에서 육개장 한 그릇을 시키면 2백50만리라를 지불해야 한다. 터키에 처음 오는 한국 방문객들이 식사 후 수천만리라가 적힌 계산서를 받아보고 깜짝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우리 화폐로 계산하려면 리라의 마지막 동그라미 셋을 지우고 여기에 6을 곱하면 대강 맞는다. 터키화폐의 대외가치는 지난해 7월 미화 1달러당 8만7천리라였는데 지난 상반기에는 13만리라로 떨어졌다. 연말이면 20만리라를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화폐의 대외가치가 떨어짐에 따라 대부분의 공산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터키의 일반 물가가 크게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는 다시 빈번하고도 대폭적인 임금인상을 초래해 경제불안의 주요인이 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워낙 심하다보니 화폐의 주요기능 중 하나인 가치저장 수단으로서의 기능은 이미 상실한 지 오래다. 거래 계약 임금지불 등도 대부분 달러로 이뤄지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터키화폐는 터키 안에서도 달러 등 외국화폐의 보조화폐로 전락한 형편이다. 동전은 거의 통용되지 않고 지폐도 최소단위가 5만리라다. 요즘은 액면가 1백만리라 5백만리라 지폐가 통용되고 있다. 조만간 1천만리라짜리 지폐가 나오지 않으리라고 아무도 장담하지 못할 정도다. 한 나라의 통화가치 안정이 국가경제와 국민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터키의 예를 보면 명료해진다. 요즘 우리나라도 대기업 부도와 금융기관 부실화로 금융 주식 외환이 불안해지고 이에 따라 대외신용도와 원화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 경제 전반에 걸쳐 위기감과 불안감이 초래되고 있다. 터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하면 좋겠다. 조기창(이스탄불무역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