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한 스티브 매퀸은 타이틀롤 「빠삐용」으로도 오스카상을 타지 못했지만 수상식장을 마지막까지 지켰다. 마치 그가 맡은 「르망」에서의 역할, 최선을 다했으면서도 패배를 고독하게 감수하는 초로(初老)의 카레이서를 연상케 하는 자세였다. 4일 가을비가 쏟아지던 대종상 수상식장을 바라보며 그를 떠올린 것은 텅빈 수상 후보자석을 보았기 때문이다. 최진실도 김승우도 문성근도 방은진도 보이지 않았다. 감독석 하객석 배우석도 썰렁하긴 마찬가지. 『꽤 많이 참석했다』는 수준이 그랬다. 이날 나온 배우들은 수상소식을 미리 알게되었거나 수상식의 코너 사회자로 정해진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불참자들의 변명은 여러가지다. 『촬영이 있어서요』 『수상자도 아닌데 창피하잖아요』에서부터 『생중계되는데 수상자도 아니면서 무슨 돈으로 새 옷을 맞춰요』에 이르기까지. 촬영 스케줄을 조정해 참석한 이들도 있다. 매번 새 옷을 선뵐 만큼 프로의식이 있는 이들이라면 왜 수상식 자체를 한편의 드라마로 만드는데는 동의하지 않는가. 소외감과 굴욕을 감추며 승자에게 환한 축하를 보내는 참 프로다운 자세는 보여줄 수 없는가. 유현목감독이 『정통 문예물은 드물고 흥행만을 노리는 추세』라고 밝힌 심사소감은 이날의 풍경과 무관치 않다. 수상식을 주관한 원로 김지미씨가 뒷정리를 마치고 한숨을 돌린 것이 이날 자정. 내내 빗줄기에 시달린 그녀는 『요즘 영화계 「뉴 제너레이션」의 실체를 보는 것 같다. 이건 인격의 문젠데…』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또 하나의 사례. 알파치노는 70년대초부터 「대부」연작 「세르피코」 「개 같은 날의 오후」가 번번이 오스카상의 외면을 받았지만 끝내 빈 자리를 보이지는 않았다. 우리 배우들에게 이런 자세를 바라는 것은 「오르지 못할 산」을 강요하는 것인가. 권기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