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재판소가 731부대 남경대학살 등 군국주의 일본의 아시아침략 만행을 역사교과서에 기술하지 못하도록 한 일본 문부성의 검열이 위법이라고 판시한 결정은 뜻있다. 그러나 문부성의 교과서 검열 자체는 합법이고 청일전쟁 중 한국인의 반일저항 부분을 삭제토록 한 것이 위법이 아니라고 한 것은 일본의 역사인식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다. 말하자면 일본식 역사바로세우기의 한계인 셈이다. 이번 판결은 일본의 과거사 반성과 바른 역사기술을 촉구한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郎)교수의 32년간에 걸친 끈질긴 법정투쟁이 얻어낸 승리라는 점에서 돋보인다. 일본 각료들의 신사참배 등 과거회귀 풍조가 거센 가운데 한 외로운 양심과 그를 지원하는 소수 지식인들이 일본의 각성을 법정에서 촉구한 것이다. 이것 또한 일본식 역사바로세우기의 한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일본에는 군위안부 남경대학살 등을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기술하는 것은 일본을 「나쁜 나라」로 가르치는 자학사관이라며 「반일교과서」를 회수하자는 운동이 끊임없이 전개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들 극우보수 지식인들의 압력에 기대어 한일 양국 정상이 합의한 역사공동연구조차 미적거리고 있는 실정이다. 유엔인권위원회가 촉구한 군위안부문제 해결에도 여전히 소극적이다. 이에나가교수는 그릇된 과거를 덮어둔채 올바른 국제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말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일본 국민의 눈을 가리는 일이다. 그래서는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대국(大國)으로 거듭날 수 없다. 이번 최고재판소 판결이 일본의 허심탄회한 과거인식에 획기적인 전환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