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기의 기장과 부기장 항법사 3명은 추락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활주로에 정상적으로 착륙하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었을까. 미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가 블랙박스를 1차 분석한 결과 사고기는 야산에 충돌할 때까지 정상보다 훨씬 낮은 고도를 유지하고 있었음에도 조종실은 지극히 평온한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종실의 3명이 동시에 이같은 착각을 일으키도록 한 요인이 무엇이었던가를 밝히는 것이 사고원인 규명의 최대 미스터리인 셈이다. ▼고도계 조작 착오〓전문가들은 이번 사고처럼 비행기가 글라이드 슬로프(활공각시설)의 도움없이 착륙할 경우 고도계와 거리측정기의 역할이 중요하며 이들 계기조작에 문제가 발생할 때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언덕이 많아 지면이 울퉁불퉁한 괌 공항 주변에서는 지상과 상공의 기압차를 이용, 고도를 측정하는 기압고도계를 통해 고도를 파악한다. 그러나 열대지역인 괌은 시시각각 기상상태가 급변하기 때문에 관제탑에서 제공한 기압정보가 5∼10분만에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기압정보는 결국 조종석 고도계에 잘못된 고도정보가 입력됨을 의미하고 이는 곧바로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진다. 관제탑에서 받은 기압정보를 조종사가 무심코 고도계에 잘못 입력했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관제미숙〓관제탑에서 조종석에 잘못된 기압정보를 불러줄 수 있다. 또 착륙하려는 항공기의 고도가 정상운항고도보다 현저히 낮을 경우 관제탑은 즉시 이를 조종사에게 알려줘 비행기가 상승하도록 해야한다. 그러나 이번 사고기의 추락직전 관제탑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거리측정기 고장〓착륙지점과의 거리를 재는 거리측정기(DME)는 평소에도 1백∼2백m 오차가 생긴다. 장비가 낡거나 정비불량일 경우 심하면 수㎞까지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 시계(視界)가 양호한 상태에서는 이 정도 오차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악천후에다 고도계와 거리측정기에 동시에 문제가 발생했다면 치명적인 판단착오를 가져올 수 있다. ▼조종감각 상실〓조종사들은 운항중 갑자기 평형감각상실상태에 빠져 순간적으로 판단착오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조종사들은 『사고를 당할 때는 「귀신에 홀린 것처럼」 평상시와 달리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기장이 조종감각을 상실하고 착륙준비에 분주한 부기장 등이 이를 눈치채지 못하면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사고당시 괌 공항주변에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내리고 있었고 시계도 불량한 상태였다. 또 생존자들은 「사고직전 기체가 몹시 흔들렸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조종사가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홍성철·이철용·부형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