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2년 미국을 뒤흔든 워터게이트 사건 때 닉슨대통령을 사임으로까지 몰고 간 것은 상대후보진영에 대한 불법적 도청행위가 아니라 한마디 「거짓말」이었다. 닉슨은 사건직후 『나는 전혀 몰랐다』고 잡아뗐다. 그러나 닉슨의 법률고문 딘은 73년 상원조사위 청문회에서 『닉슨대통령도 사건의 은폐공작을 알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만일 미국에서 한보사태가 터졌다면 『한보로부터 한푼도 받지 않았다』고 둘러댔던 의원들은 거짓임이 밝혀진 순간 정치생명이 끝났을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공인(公人)의 거짓말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도덕적인 비난과 함께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일이 다반사다. 그러나 우리 정치인들은 며칠도 못가 밝혀질 뻔한 거짓말을 서슴없이 늘어놓는다. 또 그런 거짓말이 정치인들의 정치생명에 별 영향을 주지도 않는 풍토가 오랫동안 계속돼왔다. 이같은 풍토가 조성된 이유에 대해 朴炳玉(박병옥)경실련정책실장은 『권력형 부정비리가 단 한번도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고 책임자가 처벌된 적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박실장은 또 『이 때문에 몇몇 정치적 희생양들조차도 본인의 잘못을 반성하기보다는 억울하다고 생각하며 일단 거짓말부터 하고 보자는 심리가 팽배해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경우 클린턴대통령이 지난해 재선한 뒤 많은 각료들을 교체하면서도 자신이 관여된 화이트워터사건 특별검사 임명권을 쥔 재닛 르노 검찰총장만은 손을 대지 못했다. 여론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白尙昌(백상창)사회병리연구소장은 『서양사람들은 자아형성 과정에서부터 개성화(個性化)훈련을 받고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라는 개념속에 자신을 묶어버리는 포괄적 자아개념을 가지고 있다』며 『진실규명보다는 거짓말을 하더라도 의리를 지키는 유교적 관습에 젖어 있다』고 진단했다. 5공 청문회에서 全斗煥(전두환)전대통령을 위해 거짓말을 일삼은 張世東(장세동)씨가 「의리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도 이같은 풍토 때문이라는 게 백소장의 얘기다. 또 유권자들의 망각증세도 정치인들의 거짓말을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윤영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