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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전 ‘등번호’ 없던 예비선수… ‘공책에 쓴 다짐’ 골로 증명해내다

4년전 ‘등번호’ 없던 예비선수… ‘공책에 쓴 다짐’ 골로 증명해내다

Posted June. 13, 2026 09:14,   

Updated June. 13, 2026 09:14


〈5판용〉한국과 체코의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1차전이 열린 12일 멕시코 사포판의 과달라하라 스타디움. 양팀이 1-1로 맞선 후반 24분 공격수 오현규(베식타시)는 주장 손흥민(LA FC)과 교체돼 그라운드를 밟았다. 선수 인생 첫 월드컵 출전의 꿈을 이룬 오현규는 11분 뒤 황인범(페예노르트)이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낮게 띄운 크로스를 문전으로 쇄도하며 왼발로 밀어 넣어 한국의 2-1 승리를 이끄는 결승골을 터뜨렸다.

이날 점심을 먹은 뒤 열이 38도까지 올라가는 등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오현규다. 하지만 그는 “정말 뛸 수 있을까,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는데 의무팀 선생님들이 극진하게 보살펴 주신 덕분에 골을 넣을 수 있었다. 이렇게 골을 넣으려고 그렇게 아팠던 것 같다”며 웃었다.

4년 전 카타르 월드컵 때만 해도 오현규는 등번호가 없는 선수였다. 월드컵 개막을 19일 앞두고 눈 주위 뼈 골절 부상을 당한 손흥민의 회복이 늦어질 경우를 대비한 ‘예비 선수’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식 멤버(26명)가 아닌 ‘27번째 태극전사’로 불린 오현규는 최선을 다해 대표팀 동료들을 도왔다. 하지만 훈련이 끝난 뒤 숙소로 돌아가서는 공책에 ‘4년 뒤엔 당당히 등번호 18번을 달고 (월드컵에) 오면 된다’고 적었다. 18번은 ‘황새’ 황선홍(58), ‘라이언 킹’ 이동국(47) 등 한국 축구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공격수들이 달았던 등번호다.

카타르 월드컵 이후 오현규는 셀틱(스코틀랜드), 헹크(벨기에), 베식타시(튀르키예)를 거치며 유럽 무대에서 경험을 쌓았다. 오현규는 2025∼2026시즌 튀르키예 프로축구 리그에서는 13경기에서 6골을 기록했다. 2024년 7월 홍명보 감독(57) 부임 이후 A매치 15경기에 출전해 6골을 터뜨린 오현규는 당당히 북중미 월드컵에 출전할 최종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고는 이날 체코전을 통해 자신이 한국 대표팀의 18번 계보를 이을 공격수라는 걸 입증했다.

한국은 이날 후반 14분 체코의 라디슬라프 크레이치(울버햄프턴)에게 먼저 골을 내줬지만 후반 22분 황인범이 동점골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4년 전 손흥민의 낙마에 대비한 예비 선수였던 오현규가 이날 부진한 경기력을 보여준 손흥민 대신 투입돼 결승골을 넣었다. 오현규는 “내게는 첫 월드컵이지만 4년 전에 형들이 하는 걸 가까이서 봤기 때문에 떨지 않고 잘할 수 있었다”면서 “카타르 월드컵 이후 개인적인 기량이 크게 성장했다. 유럽 선수들과 부딪힐 때도 자신감이 있다 보니 득점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오현규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성장하는 과정에는 가족의 헌신도 있었다. 오현규의 아버지 오해선 씨는 경기 남양주시에서 추어탕집을 운영한다. 오현규는 과거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남들이 이유식을 먹을 때 나는 추어탕에 밥을 말아 먹었다”라며 “추어탕만 만 그릇 이상 먹은 것 같다. 좋은 체력과 피지컬을 갖게 된 비결”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들의 월드컵 데뷔전을 보기 위해 오 씨는 가게 문을 잠시 닫고 멕시코까지 날아왔다. 아버지 오 씨의 카카오톡 프로필 소개글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축구선수와 가족이 되기를 소원’이다. 오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월드컵이란 큰 무대에서 아들이 결승골을 넣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선수 인생 첫 월드컵 경기를 앞둔 아들에게 “그냥 즐겼으면 좋겠다. 큰 무대에 나설 때는 마음을 비우고 즐겨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오현규는 이날 경기를 마친 뒤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오현규는 “지금부터 (월드컵이 끝나는) 한 달 뒤에는 부모님이 가게 문을 열지 않으셔도 되게끔 내가 남은 경기를 더 잘해서 앞으로도 편하게 모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배중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