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일 일본 도쿄 북동쪽의 도치기현 사노시. 마을 진입로는 온통 진흙투성이였다. 목에 수건을 두르고 삽을 든 주민 10여 명이 연신 진흙을 치웠지만, 원래 도로의 색이 어떠했는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진흙이 사방에 퍼져 있었다. 12, 13일 일본 수도권과 도호쿠(東北) 지역을 강타한 태풍 하기비스로 이 마을 주민 4명이 숨졌고 1500채 이상의 가옥이 무너졌다.
NHK 방송에 따르면 하기비스로 인한 사상자는 14일 오후 4시 현재 사망자 42명, 행방불명 15명, 부상자 198명이다. 사망자는 주로 동일본 지역 10개 현에서 발생했다. 일본 언론은 아직 정확한 피해 집계가 끝나지 않아 사망자 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국토교통성은 이날 “21개 하천에서 제방이 24군데 무너졌고 142개 하천에서 범람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국토지리원은 나가노현의 지쿠마가와 제방 붕괴로 인해 JR동일본 나가노 신칸센 차량 센터 부근에 최대 4.3m 깊이의 침수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신칸센 고속철도 차량 120량이 침수되는 전례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호쿠리쿠 신칸센용 열차의 약 3분의 1이 피해를 봤다.
도쿄만에 정박 중이던 한 화물선도 침몰된 것으로 확인됐다. 외국 국적의 승선원 12명 가운데 9명이 발견됐으며, 이 중 5명이 사망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사이타마현 가와고에의 한 게스트하우스에 고립된 87명이 소방대원에 의해 전원 구조됐다. 전날에는 이 지역 특별요양원에 입주했던 124명이 구조돼 인근 대피소로 이송됐다.
이날 13개 광역지자체 13만5000가구 이상은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피해를 겪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전기도 끊겼다.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하기비스로 52만 가구가 정전 피해를 봤다. 도쿄전력에 따르면 강풍과 폭우에 따른 침수로 14일 오전 6시 기준 도쿄 등 수도권 5만2200가구에서 정전이 계속되고 있다. 도쿄전력은 16일까지 90%가량 복구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14일 수도권과 도호쿠 지역에 비가 오면서 강 수위가 다시 높아졌다. 토사가 추가로 무너질 가능성도 커 복구 작업 속도가 상당히 더딜 것으로 보인다.
사노=김범석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