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에는 폭력 아빠에게 시달리다 옮겨온 아이들이 살고 있다. 이곳 상담원들은 매일 폭력 아빠들과 전쟁을 치른다. 이곳에서 부모 자식 사이는 천륜()이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처럼 보인다. 조직폭력배 A 씨(34)는 술만 마시면 시설로 찾아와 초등학교 4학년 아들(10)과 1학년 딸(7)을 내놓으라고 소리를 지르고 협박을 일삼는다. 결혼 초 아내와 다툼이 잦았던 A 씨는 화가 나면 물건을 부수거나 아이들을 때리며 화를 풀었다. 아내가 집을 나가자 A 씨는 엄마를 닮은 너희를 죽여 버리겠다며 협박했다.
또다른 폭력 아빠는 매일 시설로 전화를 걸어 아이를 내놓으라고 악을 쓴다. 알코올 의존증(중독)이라는 폭력 아빠는 술병을 들고 나타나 협박하기도 했다. 심지어 시설이 내 아이를 납치해 갔다며 경찰에 신고하는 적반하장 폭력 아빠도 있다. 이들은 나는 어릴 때 아버지에게 맞고도 잘 자랐다, 내 방식대로 내 아이를 키우는데 웬 참견이냐며 친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아빠에게도 친권과 천륜을 인정하는 게 타당한 일일까.
폭력 아빠와 과감한 단절
폭력 대물림을 끊기 위해서는 가해자인 아빠와 피해자인 자녀를 격리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한결같은 견해다. 하지만 부모의 권리인 친권을 존중하는 사회 통념상 쉽지는 않다.
김경희 중앙아동보호기관 팀장은 폭력 가정에 가보면 흉기를 든 아빠가 내 자식 내가 알아서 하니 나가라고 소리친다며 위급한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아이를 시설로 옮겨 보호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관련 법규에서는 부모가 양육하기 어렵거나 자녀에게 상해를 입힌 경우에는 경찰과 보호시설 상담사의 판단에 따라 일시 보호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앞선 사례들처럼 친권을 앞세우는 폭력 아빠가 적지 않아 이 규정이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폭력 아빠가 아동보호기관에 입소한 자녀를 다시 데려갈 때도 문제가 남는다. 부모와 자녀, 그리고 시설 전문가의 동의가 필요하다. 시설에서 동의하지 않으면 폭력 아빠는 자녀를 집요하게 설득한다. 나이가 어린 아이일수록 폭력 아빠를 외면하지 못해 가정으로 보내달라고 먼저 요구하는 경향을 보이는 게 문제. 한 시설 관계자는 폭력 피해 아동이 시설이 아닌 부모의 사랑 속에 원래 가정에서 크는 게 상처를 치유하는 데 가장 이상적이라면서도 일단 데려가고 나면 대부분 폭력 아빠는 반성하기는커녕 아이가 배신하고 도망갔다며 보복성 폭력을 휘둘러 아이의 상처를 키우기도 한다고 말했다.
폭력 아빠에게 처벌과 교육을
전문가들은 폭력 아빠의 폭력 대물림을 막기 위해 폭력 아빠에 대한 처벌과 교육 강화, 피해 아동 지원, 주변인의 신고를 통한 사전 예방 등 3가지를 대안으로 꼽고 있다. 19일 아동학대예방의 날을 맞아 보건복지부와 굿네이버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등도 폭력 아빠로부터 아동 보호를 호소하고 폭력뿐 아니라 방임, 정서 학대 등 아동 학대 방지를 위한 행사를 열고 대안을 논의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정부가 9월 국회에 제출한 아동복지법 개정안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빠른 통과를 위한 관심을 촉구했다. 법안에는 아동 학대 예방을 위한 부모 교육 의무화, 학대 부모에 대한 처벌 강화, 학대 피해 아동 지원확충 방안 등이 담겨 있다.
아빠의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사전 신고도 강조됐다. 폭력 아빠 피해 아동들은 신체뿐 아니라 심리적인 후유증을 심각하게 겪어 치료가 쉽지 않은 데다 다른 가족 구성원까지 치료하고 상담하면 막대한 예산과 시간이 투입돼야 해 사전 예방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민간단체들이 주변에서 아동 학대가 일어나거나 의심될 경우 외면하지 말고 신고하도록 캠페인을 벌여왔지만 참여가 저조했다. 심지어 교사 의료인 등 아동 학대 신고의무자의 신고율도 외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편이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폭력 아빠가 자식에게 휘두르는 폭력을 주변에서 훈육의 일환으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아이를 더 안전하게 보호해야 폭력이 대물림되지 않는다며 기존의 가정폭력방지법이 아닌 아동학대방지법에 자녀 폭력 근절을 위한 강한 조치를 담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






